[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 2025년 03월 17일 회개와거룩함 서울제단 주일예배
목차
이 설교는 2020년 11월 27일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서론적 내용을 다룬다.
- 인간의 타락이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아브라함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으며, 이는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 예수님의 은혜는 모든 인간을 죄로부터 완전히 구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권능이 있다.
- 크리스천이 죄된 삶을 사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이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아 새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은밀하게 다시 옛 사람으로 돌아가는 문제가 발생하여 교회 안에서도 죄 속에 사는 모습이 발견된다.
2. 🔥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방법

- 교회 안에 죄가 만연한 것은 옛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죄를 버리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바뀌어 천국에 집중하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신성의 충만함을 받았으므로, 마귀를 대적하고 죄를 물리칠 수 있는 충분한 권능을 가지고 있다.
-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해져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 마귀는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하지만,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대적하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
2.1. 교회 내 죄의 만연과 옛사람의 회귀
- 현재 교회 안에 죄가 만연하고 옛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문제가 있다.
- 육체의 일은 음행, 호색, 우상숭배, 분쟁, 시기 등으로 나타나며, 이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 반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등으로 이는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모습이다.
-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그 정욕,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으로 살며 행해야 한다.
- 현재 교회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역행하는 죄악된 삶을 살고 있어, 이를 회복하기 위해 선지자가 보내졌다고 한다.
2.2. 매일의 십자가와 새로운 삶
- 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실천이 필요하다.
-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며, 이는 죄된 삶을 버리는 중요한 순간이다.
- 은혜로 받은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십자가를 지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의 삶은 완전한 전환점이 되어, 가치관이 바뀌고 천국을 향해 집중하게 된다.
- 변화된 삶은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2.3. 변화와 권능: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의 삶
-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것과 천국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된다.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신성의 모든 충만함을 받아 죄를 물리칠 수 있는 충분한 권능을 갖게 된다.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는 예수님의 보혈의 권능으로 인한 것이다.
-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충분한 신성으로 인해 마귀와 죄를 물리칠 수 있다.
- 그러므로 현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보이는 죄악된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변화가 필요하다.
2.4. 회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
-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회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도망가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하신다.
- 현대 교회의 문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려는 태도에 있다.
-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는 은혜 안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 할 일이 없다는 주장과 대조된다.
2.5.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 예수님의 사례
-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함을 입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 마귀는 주로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부와 영광으로 유혹하므로, 이를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숙지하고 있어야 마귀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 대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으며, 이는 마귀를 대적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 마귀는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미끼로 사용하지만, 이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얻은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3. 🔥 마귀의 공격과 성령 충만의 중요성

- 마귀는 매우 집요하게 공격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으므로 끝까지 대적해야 한다.
- 마귀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등 교묘한 방식으로 공격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데 필수적이다.
-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은 대조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중요하다.
- 현대 교회의 문제점으로 세속화와 부도덕함이 지적되며, 이는 성령 충만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3.1. 마귀의 집요한 공격과 예수님의 대응
- 마귀는 매우 집요하게 예수님을 시험하며, 한 가지 거부당하면 다른 방법으로 계속 공격한다.
- 마귀는 성경 구절(시편 91:11-12)을 교묘하게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다.
-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대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단호히 대응했다.
- 마귀는 모든 시험을 다한 후 일시적으로 떠났지만, 이는 다시 기회가 있을 때 돌아올 것을 의미한다.
- 성도들은 마귀가 쉽게 포기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끝까지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3.2. ️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과 성령의 중요성
-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마귀가 도망간다.
- 마귀를 효과적으로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수적이다.
-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수 있으며, 이는 휴거되는 교회의 특징이다.
-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없다.
- 크리스천의 삶에서 성령의 역할은 핵심적이며, 성령 충만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3.3. ️ 성령을 따르는 삶과 육체의 욕심을 대조
-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
- 성령을 받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 육체의 소욕은 성령과 서로 대적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육체의 일은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시기, 분열 등으로 나타난다.
- 이런 육체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3.4. 현대 교회의 문제점과 성령 충만한 삶의 대조
-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 부도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진정한 성령 충만과 거리가 멀다.
-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등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교회 안에서 드러나야 한다.
- 현대 교회에서는 낙태, 디스코 룸에서의 찬양 등 신성모독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어 성령의 부재를 보여준다.
- 한 환상에서 교회와 디스코텍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동일했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교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 그리스도인들은 첫 번째 십자가의 보혈로 온전히 거듭나야 하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3.5. 마귀의 공격과 교회의 현 상태
- 마귀는 홍수처럼 갑작스럽게 공격하여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을 휩쓸어 버린다.
- 현재 교회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나뉘어 있고, 공의와 정의가 멀어져 있다.
- 교회에 들어가면 빛 대신 어두움을 만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한 회개와 거룩함으로의 회복 메시지에 반대하고 있다.
- 교회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짓말하며, 억압과 반역을 말하고 거짓된 말들을 품고 있는 상태이다.
4. 🔥 현대 교회의 타락과 회개의 필요성

- 현대 교회는 반역과 배교가 만연하여 회개와 거룩함에 대한 메시지를 거부하고 있다.
- 교회 안팎에서 주님에 대한 신성모독과 반역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마귀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다.
- 회개와 거룩함을 말하면 교회 안의 마귀가 일어나 대적하며, 의로움을 싫어하고 주님께 등을 돌린다.
-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겸손한 회개가 필요하며, 이는 인간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성령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필수적이며, 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다.
4.1. 현대 교회의 문제점과 회개의 필요성
- 현대 교회안팎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거역이 만연하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회개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메시지를 거부하고 있다.
- 교회 내에서 신성 모독과 반역이 고착화되어 있으며, 회개와 거룩함에 대한 메시지를 거부한다.
- 겉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성령의 권능을 통해 새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계신다.
4.2. 탕자의 귀환: 회개와 용서의 여정
- 교회의 타락상태가 심각하지만, 주님은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 탕자의 비유는 자아 성찰과 회개의 과정을 보여준다.
- 아버지(하나님)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려가 안아주며,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베푼다.
- 회개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을 상징한다.
- 이 비유는 교회가 아무리 타락했더라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4.3. ️ 탕자의 귀환과 아버지의 용서
- 탕자는 죄악에 빠져 돼지 우리에서 더러워지고 초췌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발견하고 달려가 껴안으며,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새 옷을 입힌다.
-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장 반지를 주어 보좌의 권세와 성령을 상징하며, 발에 신을 신겨 새로운 사역의 시작을 알린다.
- 이는 하나님의 선한 마음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죄의 더러움을 씻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4.4. 마귀를 대적하기 위한 회개와 겸손의 중요성
-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
- 회개란 인간으로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성령의 도움이 필요함을 깨닫는 것이다.
- 성령 없이는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으므로, 이를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에 들어갈 신부로서,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과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의 왕권과 권능을 받게 되어 사탄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4.5. ️ 영적 전쟁과 성령의 필요성
- 마귀와의 싸움은 영적 전쟁으로, 혼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
-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하심이 마귀를 이기는 데 필수적이다.
- 겸손과 회개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것이 성령을 받는 첫 단계이다.
- 성경의 여러 인물들(삼손, 기드온, 다윗, 여호사밧)도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주님의 영이 필요했다.
- 현대 교회는 성령 없이 행동하고 있어 문제가 있으며, 성령의 도움 없이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다.
5. 🛡️ 마귀를 이기는 방법: 성령의 도움과 회개
- 마귀를 대적하여 이긴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았으며, 스스로 이긴 자는 없다.
- 삼손, 여호사밧, 다윗 등의 사례를 통해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하며, 이를 위해 회개와 겸손이 필요하다.
- 현재 교회는 회개를 싫어하고 교만함이 있어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돌아가 죄로부터 돌이켜야 하며, 이를 통해 성령 충만함을 얻을 수 있다.
5.1. 성령의 도움으로 마귀를 이기는 방법
- 마귀를 대적하여 이긴 성경 속 인물들은 모두 성령의 도움을 받았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 사람은 없다.
- 삼손의 경우, 어릴 때부터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는 마귀를 대적할 사명이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회개가 중요하다.
- 삼손의 마지막 전투는 성령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힘을 구하고 회개한 후에 이루어졌다.
- 주님의 영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사탄을 대적할 수 없으며, 강인했던 삼손도 결국 하나님을 의지했다.
5.2. ️ 마귀를 이기는 전투는 주님께 속한 것
- 현재 교회는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 전투는 주님께 속한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사탄을 무너뜨릴 수 있다.
-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며, 이는 여호사밧과 유다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교회는 회개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야 한다.
5.3. ️ 다윗과 골리앗: 성령의 힘을 보여주는 싸움
- 다윗은 외모가 붉고 아름다워 골리앗에게 업신여김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 다윗은 칼과 창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웠으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리고자 했다.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다윗은 물매와 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 다윗이 사용한 돌은 메시아를 상징하며, 이는 성령의 필요성을 나타낸다.
-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은 사탄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지며, 이는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신성 때문이다.
5.4. ️ 성령 충만을 통한 영적 전쟁의 승리
- 크리스천의 삶은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과의 매일의 전쟁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필요하다.
-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므로,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와 겸손이 선행되어야 한다.
- 현재 교회는 교만 때문에 회개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영혼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태도이다.
-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전쟁에 능한 주님의 권능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대적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 성령 충만을 통해 얻는 권능은 삼손의 마지막 권능이나 탕자의 회복처럼, 회개와 겸손 후에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5.5.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의 결론
-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낮추어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 죄로부터 돌이키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여 거듭난 후, 주님께서 성령으로 채우실 것이다.
-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진정한 겸손과 회개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이다.
- 하나님께 복종하고 자신을 맡기며, 모든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는 구체적인 기도를 통해 거듭날 수 있다.
- 성령 충만함을 받아 마귀의 공격에서 승리하고, 의로움과 거룩함을 세워갈 수 있다.
[스크립트 전문]
네, 오늘 말씀은 선지자 님께서 이제 2020년 11월 27일에 전하셨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 저희가 이제 엘리야의 외침을 통해서 선지자님의 말씀이 많이 이제 전해지고 있는데, 사실 엘리야 외침에는 이제 저희가 선지자님께서 하신 말씀을 또 듣고, 이제 글로 적어서, 이제 녹음을 다시 하게 되거든요.
네, 그 부분 부분들 중에 이제 빠진 것들이 좀 있어요. 아, 아직 녹음을 안 한 부분들이 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을 좀 추려서, 이제 설교도 하고 다시 녹음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거는 제가 이제, 어, 물론 우리가 다 내용들은 사실 다 이제 결론적으로는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이거는 그래도 LDI 때 방송이 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네, 그래서 이거를 우리가 하고, 그리고 이게 제가 이제 막상 해 보니까 한 섯 시간인가, 다섯 시간 정도 말씀을 하신 거더라고요. 근데 이거를 오늘 다 그대로 읽기에도 너무나 벅차기 때문에 말씀을 좀 많이 줄였습니다. 근데 엘리야 외침에 이거는 원본은 그대로 방송에 제가 녹음을 해서 올릴 거니까 그때 다시 한번 들으시면 됩니다.
자, 그래서 2020년 11월 27일에 어 선지자님,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님과 동행하고 마귀를 이길지에 대해서는 사실 또 그다음 그 설교 때 더 구체적으로 전하셨어요. 막상 여기에서는 이제 서론에 대해서, 이 개괄적인 거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거는 이제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고, 오늘은 어떻게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그 서론, 어, 그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선지자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실 때 이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 안에 죄가 발견되는 것, 이런 문제에 대해서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선지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아직도 이기지 못하는 죄악, 아직도 우리가 흔들리고 있는 부분들, 죄와의 전투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과 권능이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가 오늘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그 힘을 우리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먼저 어떻게 마귀가 싸워 이길 것인가를 다루기 전에 우리가 기초로 살펴봐야 하는 신앙의 기초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주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인간을 창조하셨고, 거기에 타락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 때 그리고 죄악에 빠졌었습니다. 자, 주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신 목적과 의도는 인간이 악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인간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되 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인간이 악을 알지 못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했다, 그들이 그 열매를 만지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자, 그래서 그 타락 이후에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 길을 그룹과 두루도는 불칼로 막으셨습니다. 자, 그 불칼은 활동성이 있는 칼입니다. 멈춰 있는 게 아니고 칼집에 꽂혀져 있는 칼이 아닙니다.
누워 있는 칼이 아닙니다. 두루도는 불칼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이후로 인간의 역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반역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까지 그 내용이 쭉 이어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자,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 주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미션을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투자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백남호 감독님께서 이제 시간표를 쭉 보여 주실 때 그때 아브라함이 나왔죠, 그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에게 한 명 한 명씩 언약을 주셨 주시는 그때였습니다. 자, 그때 아브라함이 모든 인간의 희망이 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어젠다를 아브라함이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에 이어서 그 아들 이삭을 통해서 이제 야곱,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에게 이어집니다. 자, 야곱을 하나님께서 발견하셨을 때 야곱이 야곱에게 환상을 하나 보여 주셨죠,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과 땅과 땅을 연결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도 언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야곱에서 유다로 또 이어집니다, 그 언약이. 자, 이제 주님께서 유다를 찾으셨고 잃어버렸던 그 희망을 유다를 통해서 찾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다 지파에서 가자가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자, 이것은 메시아의 오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을 주님께 바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거룩한 백성들을 사서 드리셨습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교회를 주님께 회복시키기 위함 이셨습니다. 그렇게 메시아께서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님께 드리시기 위해서 치르신 대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메시아 때, 메시아께서 이제, 이제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의 상태를 보시면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 안에 아직도 죄가 보이냐 하는 것입니다.
자, 은혜가 어떤 사람을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헛된 것이 됩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죄된 삶을 산다는 것은 아, 심각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셨던 그 은혜는 모든 인간을 죄로부터 완전히 구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권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로마서 6장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기초로 보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부터 7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자, 여기서 매우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그 은혜는 착오도 넘치는 권능이 있다고 하십니다. 교회를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연결하십시오.
교회를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천국의 입성 기준인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 주님께서 인간의 삶을 통해서 성취하시는 것은, 즉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는 것이 우리 가운데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받고, 그래서 죄에게 굴복했다는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의도하셨던 은혜의 목적은 누구든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십자가에서 육을 못 박게 하는 그런 권능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례를 통해 완전히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자,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은밀하게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 속에 사는 모습을 우리가 눈으로도 발견하는 것입니다. [1]교회 안의 죄가 만연한 모습을 본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자,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1절까지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자, 성경에서는 분명히 육체에 속한 자들의 모습을 너무나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 이어서 볼 거지만, 자, 여러분이 거듭날 때 반대로 앞에서 발견돼야 될 예수님의 모습을 22절부터 소개하고.
계십니다. 자,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되는, 우리가 세례를 받습니다. 그때 새 생명으로 예수님과 함께 부활을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그때 부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지 분명하게 여기서 말씀을 하십니다. 22절, 23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아멘. 자, 이것에 관해서는 법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자, 오늘날의 교회가 보여야 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앞에서 읽었던 로마서 6장 4절과 함께 이것은 공동 리드 구절입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25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자, 오늘날 교회가 입고 있어야 할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선지자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와도 같습니다.
교회가 원래 모습과 지금의 현재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지자님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전 세계에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죄악에 빠진 삶이 삶을 전하고 부추기고 있는 문제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속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 것처럼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침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님과 함께 새 사람, 새 생명 가운데 부활해야 됩니다.
원래 죄악된 삶에서 구원받지만, 아직도 그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것을 읽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 갈라디아서 5장 17절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에 대해 죄에서 탈출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 탈출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이때 죄된 삶을 버리는 그 순간이 여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그것을 상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죄를 버리는 것을 계속 상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날마다고 하셨습니다. 한 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솔루션이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옛사람이 다시 돌아와서 교회를 다시 어지럽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그 육신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실제로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필요한 솔루션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구원으로 우리가 받게 되는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으로 우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제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 날마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속에서 기억을 새롭게 해서 아침에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기억해야 될 것은 “와, 오늘도 내가 다시 십자가를 져야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매일 그 옛사람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못 박은 후에 그 옛사람을 계속 십자가에 못 박아 둬서 그가 다시 내려와서 교회 안에 있는 여러분들을 죄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실천해야 되는 굉장히 중요한 솔루션입니다.
육을,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옛 사람은 계속해서 원래 있던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게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영접한 이후에 삶이 완전히 전환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마치 이렇게 비유를 하셨습니다. 저울이 확 기울어지게 되는 그런 시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여러분들이 죄 속에서 사는 삶을 버린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새 피조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새로운 삶을 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옛사람이 세례 때 예수님과 함께 매장되었다, 그 구원의 전점에서 이제 앞을 보면서 삶을 천국을 향해 집중합니다. 삶에서의 가치 구조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자, 사람들이 여러분을 봤을 때, “이 사람은 내가 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야, 이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고 알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영화, 우리가 즐겨보는 그런 영화를 보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제 그들은 언제나 속으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것을 볼 때 천국에서 영생에 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걸 늘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질문합니다. “예수님이라면 과연 이 일을 하실까?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살아 계시다면, 그러니까 이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을까? 바로 이 전화 대화, 또 음란한 대화, 이런 것들에 함께 참여하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늘 질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아는 예수님은…” 이런 것과 함께 난 동참해서 주님이 내가 이런 영화를 볼 때,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해, 이렇게 또, 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거는 요즘 현대적인 마인드, 예전에 십자가의 육을, 이제 십자가의 길을 버리셨던 그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접목을 하셔야 됩니다. 자,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다면, 사람들이 이 사람이, 어, 시간이 갈수록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 이틀이 하고 일이 갔을 때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하늘의 것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게 될 천국의 메시아, 그것을 위해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 전환점에 삶을 천국에 집중합니다. 그때부터 여러분들은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충분한 권능이 주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의로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그 권능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죄악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자, 골로새서 2장 9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9절 먼저 읽어 주세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자,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인자 예수님, 성령님의 그 신성이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거듭난다면 우리가 그것을 동일하게 우리의 육체 가운데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권능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10절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라.”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다고” 똑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받은 것, 우리 안에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런 엄청난 신성하지,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부터 15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이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느니라.” 자, 여기서 보시면 결국에는 이기셨다 말씀하십니다. 승리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로 돌아갈 핑계가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 고린도후서 3장 18절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자, 이것을 읽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크리스천의 구원에서 변화, 변화가 있어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변화로 인해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를 수 있습니다. 변화되는 과정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과 지금과 변화가 없는, 그 죄 속에 사는 것은, 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변화의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권능은 교회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가장 연약한 크리스천이라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다면,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충분한 신성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마귀를, 죄를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가장 연약한 크리스천이라고, 그 마귀를 완전히 밟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 안에 보이는 죄된 모습, 크리스천들에게 보이는 죄악된 모습들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미 죄를 짓고 있으니 그냥 그대로 살아야 할까요? 자, 서두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회복을 원하십니다.
교회 회복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자, 야고보서 4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까요? 야고보서 4장 7절, 8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자, 우리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하십니다. 자, 지금의 세대들의 큰 문제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려고 합니다.
주님께 어느 정도는, 일부는 신실하게 정말로 맡깁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라고 하십니다. 자, 예수님께 완전히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마귀를 대적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귀가 도망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러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마귀의 머리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대적의 머리를 밟고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래서 마귀를 대적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먼저 대적, 그 마귀를 대적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에 파묻혀 사는 현대 교회가 어떻게 그들이 다시 밭을 추수리고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을지, 여기에 방법이 있습니다. 자, 지금의 전 세계 설교자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은혜 안에 있으니 스스로 해야 할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는 영원히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마귀를 하셨는지 누가복음 4장 1절부터 11절까지 보겠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주님께 복종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자, 누가복음 4장 1절 먼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며, 성령은 께서 예수님께 임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예수님께서 입으신 것입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순서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먼저 해야 될 것은 자, 죄로 죄를 회개하고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자,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된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그리고 충만함을 잊고 주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이 성공적으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매우 핵심입니다. 그리고 2절과 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수가 다음에 주리신지라.
3절입니다. 마귀가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들에게 하여 떡이 되게 하라. 자, 마귀가 처음으로 하는 함정이 있습니다.
자, 육신의 정욕에 시선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이것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는지 대해서 보는 것입니다.
자, 육신의 정욕의 시선을 먼저 두게 합니다. 자,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함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귀는 그 육신의 정욕이 땅의 것을 가지고 이제 공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 예수님께서 굶주릴 때 바로 그렇게 알맞게 접근을 한 것입니다. 자,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자, 예수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대답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하기 원하신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익숙하게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친숙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언제나 말씀이 있어야 됩니다.
말씀의 뜻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언제든지 그 말씀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공격을 막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5절과 6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내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자, 아담이 사탄에게 이것을 넘겨 줬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인해서, 자, 인간에게 주셨던 그 나라와 권세,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내 것이 되리라.” 자, 여기서 두 번째로 마귀는 세상의 부와 세상의 것, 세상의 영광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2]즉, 육신이 원하는 것을 또 한번 던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8절과 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 꼭대기에 우고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자,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마귀는 매우 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마귀가 예수님이신 줄, 하나님의 아들인 거를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절대로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한 가지를 거부했을 때 또 하나에 가지고 공격을 시작합니다.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까지 주님을 데려갔습니다. 자, 그래서 여러분이 마귀를 대적하기 원한다면, 마귀는 계획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마지막에 거의 쓰러질 때까지 마귀를 대적해야 됩니다.
자,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자, 마귀가 아주 그럴싸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자, 마귀는 시편 91편 11절, 12절을 예수님께 인용했습니다.
자, 한번 시편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귀가 이것을 인용했습니다. 그가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자, 마귀는 그냥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그럴싸하게 성경 구절로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누가복음 4장, 이제 12절, 1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또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자, 13절에서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난다고 합니다.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즉, 얼마 동안 떠난다는 것은 다시 기회가 있을 때까지만 떠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마귀를 어떻게 대적해야 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야고보서 4장 7절, 8절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해야 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가 도망갑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완벽한 모델이십니다.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마귀가, 마귀를 대적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인간이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가 도망갈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 광야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 첫 번째로 성령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자,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14절입니다. 교회가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절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자,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휴거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여기에서 정의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자, 즉 성령을 받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입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입니다. 우리가 21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6절 읽어 주세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자, 여기서도 성령의 중심적인 역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성령을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육체 욕심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 육체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매우 분주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루션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필요하신 것처럼 크리스천들도 처음부터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 17절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자, 이렇게 육체는 성령을 언제나 대적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의 삶을 보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상태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여자들이 세상의 부도덕한 패션을 따라 입는 것, 그리고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교회에서 행동합니다. 이성 친구를 찾으려고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영광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께서 줬다고 말씀하십니다. 독생자 예수님까지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18절부터 21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에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질투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 같이 경고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음악] 안에 죄가 만연한 것은 성령을 받은 만큼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거듭났습니까? 라고 묻다. 어떤 사람들은 “네, 거듭났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니라고 묻는다면 “네, 성령 충만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게 되면 부도덕 가운데 사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정말로 성령 충만한 것일까요? 왜 그들은 그들의 삶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을까요? 음란은 죄입니다.
왜 성령 충만하다면 여자의 부도덕한 옷을 입는 것을 죄라는, 입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현대 교회는 엄청난 신성 모독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육신에 속한 자들의 삶의 모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상태로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의 많은 청소년들의 핸드폰을 보게 되면 핸드폰을 가지고 음란한 영상물을 보는 것이 허다합니다. 음란물과 포르노를 접촉하는데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 갈라디아서 5장 22절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 이미지를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담는 모습입니다. 22절, 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아멘. 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품성입니다.
교회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이 갈라디아서 5장을 보면서 여기에 두 개가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과 그들이 맺는 열매, 또한 육체에 속한 삶과 그들이 맺는 열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과 그리고 육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여러분들에게 이 대조된 모습을 우리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자,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사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마귀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언제나 역사합니다. 사탄을, 아, 예수님을 사탄이 괴롭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성령을 받지 않는 현대 교회를 보시게 되면 마귀가 어떻게 괴롭히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낙태가 자행되고 디스코 룸에서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 선장님께서 어떤 환상에 대해서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자, 어떤 이제 남미 교회에 대해서 큰 집회가 있어서 남미 교회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에 도착했을 때 호텔에서 집회 전에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어디에서 집회가 열릴지 주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자, 언제나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집회 장소를 보여 주셨을 때 두 개의 문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 하나는 2층으로 된 매우 큰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문 옆에 또 다른 문, 한마디로 문이 두 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것은 디스코텍에서 들어가는 문입니다. 자, 그래서, 근데 그 꿈에서 굉장히 놀랐다고 하십니다. 양쪽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겠지 때문입니다.
양쪽 문으로 들어가는 여자들의 옷차림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가는 문이 어떤 것인지 주님께 여쭤봤다 합니다. 주님, 어느 문이 교회에 들어가는 문인지, 문인가 주님께었습니다.
자,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벌거벗은 채로 있었는데, 양쪽 문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 그랬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상태에 대해서 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가진 자들과 세상에 있는 자들이 조금의 차이점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서 말해야 된다라고 하십니다. 메시아께서 다시 십자가를 두 번째로 지시기 위해 오시지 않는다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첫 번째 보혈, 우리에게 주신 이 예수님의 갈보의 보혈로 온전히 거듭나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대적의 공격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 마귀를 대적하는 것을 다루기 전에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는 것, 공격하는지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공격하는지에 대한 모습입니다. 이사야서 59장입니다.
19절이 우리의 목적 구절이지만 다 읽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9절부터 읽도록 하겠습니다. 킹 제임스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쪽으로부터 주의 이름을 두려워할 것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부터 그의 영광을 두려워하리라. 원수가 홍수처럼 올 때에 주의 영이 그를 대적하여 깃발을 올리리라. 아멘.
자,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마귀가 공격할 때 홍수처럼 공격한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홍수가 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휩쓸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휩쓸려 떠내려가게 합니다. 자, 이것저것 줄 시간도, 준비 시간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원수가 홍수처럼 올 때, 자, 여기서 말씀하시길 주의 영이 그를 대적하여 깃발을 올린다고 하십니다. 이 기준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이거를 1절부터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11절부터 9절까지 먼저 읽어 주세요. 보라,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그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나누었고, 너희 죄들이 그의 얼굴을 너희로부터 가리기에 그가 듣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너희 입술이 거짓을 말하였고, 너희 혀가 사악함을 속이라. 공의를 위하여 요청하는 사람도 없고, 진리를 위하여 변론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들이 허망한 것을 의뢰하고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행악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는도다. 그들은 독사의 알들을 품고 거미줄을 나니, 그들의 알을 먹는 자는 죽으며, 그것이 밟히면 터져서 독사가 나오는도다, 그들의 짠 것은 옷이 될 수가 없나니 그들이 자기들의 일한 것으로 스스로를 가릴 수 없으리라.
그들이 일한 것은 죄악의 일이요, 그들의 손 안에는 폭력의 행위가 있도다.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그들은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빠르니 그들의 생각은 죄악의 생각이요, 그들의 길에는 파멸과 망함이 있도다. 그들은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가는 길에는 정의가 없으며 그들이 그 길을 구부러진 길로 만들었으니, 그 길로 가는 자는 누구든지 화평을 알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공의가 우리에게서 멀고 정의도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는도다. 우리가 빛을 기다리나 어두움을 보며, 밝은 것을 바라나 어둠 속을 걷는도다. 자, 이 말씀은 지금의 교회 모습을 정확하게 드러낸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자, 사람들이 빛을 보기 위해 교회에 들어가지만, 들어가는 순간 어두움을 만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어서 10절과 11절까지 쭉 읽어 주세요. 우리가 눈먼 자들처럼 벽을 더듬으니, 마치 눈이 없는 것처럼 더듬으며 정오에도 밤인 것처럼 넘어지니, 우리가 죽은 사람들처럼 황폐한 곳에 있도다.
우리 모두가 곰같이 부르짖고 비둘기 같이 슬피 우짖나이다. 우리가 공의를 바라나 아무것도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 있나이다. 이는 우리의 허물들이 주 앞에 많으며, 우리의 죄들이 우리를 거스름이요, 우리의 허물들이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의 죄악들 우리가 아나이다.
우리는 여호와를 거역하고 거짓말하며,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억압과 반역을 말하고 마음으로부터 거짓된 말들을 품으며 또 말함이다, 아멘. 자, 이것은 우리의 교회 상태에 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자, 지금 하나님의 선지자가 와서 회개하고 거룩함으로 돌아오라는 선포를 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 범죄함을 봅니다.
많은 교회가 반대하는 것을 봅니다. [3]기도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름이 내려온다고 말했을 때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반역과 거역이 주님을 향해 자행되었습니다.
교회 밖과 안에서도 있습니다. 바깥의 모습은 이교도들의 반역이 있습니다. 그런 타락의 상황에서 마치 홍수처럼 대적이 공격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에게 회개를 말하면 회개에 대해서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오신다고 말해도 그들은 옛날에도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서 메시아께서 오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거부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 보입니다.
주님에 대한 반역과 배교의 모습이 너무나 만연합니다. 교회 안에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메시아께서 복음을 바꾸라고 얘기해도 그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면, 교회 안에 죄가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겐 정죄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뜻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새 사람이 새 생명 안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은 하나님의 선지자께서 행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구자의 걷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말하면 자기네들이 아는 선지자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그 선지자가 세운 불구자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그 선지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말하는 선지자가 있다면, 왜 그 선지자는 여자들이 노출된 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책망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 세대 모습입니다. 교회 바깥에도 있고 똑같은 것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주님에 대한 신성 모독과 주님에 대한 반역이 만연했고 고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거룩함을 이루라고 하면 그것을 듣기 거북해 합니다. 이해는 한다라고 하지만 적용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거룩함을 얘기하게 되면 그들 안에 있는 마귀가 일어나서 대적을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마귀가 의로움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억압과 반역을 말하고 마음으로부터 거짓된 말들을 품으며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현대 교회 상태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다 드러내십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에서도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있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자, 14절과 16절을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심히 나니, 이는 진노가 맹렬하게 공격하여서 돌아오는 자가 없음을, 중재자가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자기 팔로 그에게 구원을, 그것으로 그를 지탱했으나 멈추고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가 없다라고 합니다. 되돌아갈 길을 찾아야 된다고 말하는 자가 없습니다.
모든 교회가 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함께 한 방향으로 갑니다. 서로 상담하고 위로도 합니다.
이때 서로 서로 얘기를 할 때 누군가 일어나서 “여러분, 우리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자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악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홍수처럼 그들을 마귀가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 이어서 17절과 1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의를 흉배로 입으시고 구원의 투구를 자기 머리에 쓰시며 복수의 옷들로 옷 입으시고 열심으로 겉옷을 입으셨다. 그들의 행실을 따라 그렇게 갚으시며, 그의 적들에게는 분노로 하시고, 그의 원수들에게 보복으로 하실 것이며, 섬들에게도 보복으로 갚으시리라. 자, 그래서 19절, 우리가 아까 읽었던 19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쪽으로부터 주의 이름을 두려워할 것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부터 그의 영광을 두려워하리라. 원수가 홍수처럼 올 때 주의 영이 그를 대적하여 깃발을 올리시느니라. 우리는 지금 교회 상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0절은 제가 읽겠습니다. 구속주 시온에게 야곱 안에서 허물로 떠난 자들에게 오시리라, 주가 말하노라. 자, 이러한 타락의 모습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어둠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다른 구절들을 보겠습니다. 자, 누가복음 15장에서 이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잃은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타락했다 해도 주님께서 회복을 얘기하십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기준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마귀가 홍수처럼 공격하게 되어도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20절을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근히 여겨 달려가 목을 으추니. 자, 탕자는 자, 이제 스스로 떠올립니다.
아버지를 다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자, 17절부터 2절까지 한번 다시 읽겠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줄여 죽는구나.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를 보고 근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아멘.
자, 22절은 예수님의 보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더러움을 씻을 수 있습니다. 자, 탕자는 엄청난 죄악에 빠졌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돼지 우리에서 스스로가 더러워졌습니다. 아주 역한 냄새가 났습니다.
그의 몸도 초췌해 있고 매우 피곤했습니다. 아마 원래 나이보다도 두 배는 더 많아 보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고난 때문에 그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 그는 마치 마지막 여정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그는 희망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고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여정을 시작합니다. 근데 그러기도 전에 아버지를 보기도 전에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먼저 달려옵니다. 아들의 목을 껴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이 새 옷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힙니다. 그리고 인장 반지를 줍니다.
그 인장 반지는 보좌의 권세를 말합니다. 보좌의 권세를 항상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인장 반지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이제는 너의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서 이 하나님의 선한 마음에 대해서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장 반지를 끼우고 새 옷을 입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열방에 보내서 만방에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오늘의 주제는 말씀드렸다시피 사탄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성과 선하심이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인자해서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충만한 신성이 예수님 안에 거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왕권과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피조물인 사탄이 어떻게 그런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의 원래 신분을 회복해야 됩니다. 천국의 왕의 신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힌두 성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신부는 이슬람 모스크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에 들어가는 교회는 불교 사원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교회는 요가에서 오지 않습니다.
뉴에이지 신앙, 그런 것들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자신의 신분을 주장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주장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을 오늘 분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첫 번째 본 것은 이사야 59장 19절에서 홍수처럼 마귀가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 그 같은 홍수가 요한계시록 12장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마귀가 입에서 물을 토해 낸다라는 표현을 하셨고, 이스라엘을, 그렇지만 이스라엘을 삼킬 수 없었습니다.
자, 우리가 지금 이 구절을 읽은, 방금 탕자를 읽은 이런 이유, 그리고 타락한 상태를 보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회개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자,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첫 번째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런 회개는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이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성령이 없이 마귀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홍수처럼 받게 될 것입니다. 자, 마태복음 23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래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데부터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잠언 3장 34절입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여기서 겸손을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구절은 히브리서 13장 5절과 6절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자, 이것은 혼자서는 마귀의 공격을 막고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서 주님께서 나를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교회가 제자리로 찾아가야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자, 이것을 읽은 것은 여러분이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주님께서 이루신 그 승리에 합승하는 것입니다.
이 전투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육의 영역에 크리스천들의 신앙이 너무나 만연해 있습니다. 자,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필요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들을 충만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인도하시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죄인에게 오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릇이 필요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성령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이제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거룩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자,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주 겸손한 회개를 이루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지속된 명령입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기도원은 “나는 가장 작은 지파에 속하는데 어떻게 나를 군사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적군을 죽입니다.
삼손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다윗도, 여호사밧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주님의 영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성령이 없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성령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이 없이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4]그래서 성경에서 마귀를 대적해서 이긴 사람들은 언제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이긴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삼손과 기도원과 다윗과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사탄의 악의 홍수에서 밀려서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그 마귀를 대적해서 이긴 사람들의 몇몇을 보겠습니다.
사사기 13장 24절, 25절입니다.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더라.
자,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마귀가 대적할 미션이 있다는 것을, 마귀를 대적할 미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그래서 성령이 필요하셨습니다.
자, 사사기 15장 4절, 5절입니다. 삼손이 가서 여우 300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 나무들을 태운지라. 자, 여기에 전투가 있습니다.
영적 전투, 전투입니다. 자, 그래서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첫 번째로 필요한 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회개도 하지 않고 성령을 반역하고 배신한 가운데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회개가 중요합니다. 자.
여기서 회개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기 16장 28절입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자, 이 장면은 삼손의 마지막 전투 장면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따른 것입니다. 자, 29절, 30절 읽습니다.
결론을 보겠습니다.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니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아멘.
자, 여기에서 삼손의 회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봤을 때, 자, 죽인 자가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더욱 많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무도 사탄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삼손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었지만 삼손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자, 지금의 교회가 그들이 얼마나 마귀의 공격을 받는지 보십시오.
전투에서 상처를 받고 지기도 합니다.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삽니다. 수평적인 복음이 계속해서 전해집니다.
여러분의 위치, 여러분의 부르심, 그리고 영광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성령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 여기서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의 교회가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전투는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만 여러분을 위해 싸우십시오.
적는 것입니다,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능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투는 주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사탄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사탄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구절이지만 14절부터, 14절 먼저 읽어주세요. 여호와의 영이 람에게 하셨으니 그는 아사의 손이요, 여호와의 증손이요, 나의 손자요, 가라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이것은 여호사밧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 15절부터 20절 쭉 읽겠습니다. 유다 주민과 호사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수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어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으러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수아이 굽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들로 가라, 사이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자, 여기서 선지자님께서 주님의 선지자에 대한, 주님의 선지에 대해 신뢰하는 말씀을 살짝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생략하고 2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은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자, 여기 보시면은 회개를 싫어하고 거룩함을 싫어하면서 어떻게 거룩한 노래를 주님께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거룩하지 않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자, 여기서 보시면 주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전쟁이 시작됩니다.
22절, 23절입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주민들을 치게 하심으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문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 자,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께서 필요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도 승리했습니다. 사방으로 대적이 대적에게 둘러싸였다. 오늘은 어떤 대적이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전투 태세인 것입니다. 그 전투는 나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 유다, 유다 사람들도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영이 필요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래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회복될 때입니다. 오리지널 부르심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사무엘상 17장 4절부터 4절까지 먼저 읽겠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자, 다윗은 용사나 군인처럼 하고 완고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부드러우며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너무 어린아이 같아서 아침 식사로 먹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 그러나 41절, 46절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1절부터 아, 43절, 46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와 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자, 이제 어, 다윗에게도 성령님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영이 필요한 상황이 이른 것입니다.
자, 47절, 49절지 보겠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아멘. 자, 다윗이 주머니에서 돌을 꺼냅니다.
이 돌의 의미는 시연의 돌이요, 머리이며, 하나님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 12장에 있는 그 돌, 사람의 손에 의지하지 않는 돌입니다. 즉, 성령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 돌은 다니엘서 12장에 나온 그 돌은 거대한 바벨론 신상을 부셨습니다. 자, 골리앗, 다 다윗 안에 있는 하나님이 더 크다는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의 손을 주머니에 놓고 메시아를 던진 것입니다. 그는 창과 방패가 아닌 주님의 이름으로 싸웠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가장 약한 크리스천들, 즉 성령의 충만한 사람들은 사탄보다 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그 하나님이 더 크십니다. 뱀보다 훨씬 큽니다. 여러분들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불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우리는 거룩해야 됩니다. 성경에서 마귀를 대적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세대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전쟁은 주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매일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입니다, 타락한 천사들 말입니다. 창세기 15절, 15절에 창세기 15장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이 원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에서 마귀는 인간을 이용해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메일을 하고 학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주님께서 매우 강력한 기준을 세우십니다. 이 싸움에서 성령님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래서 이사야서 2장 1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12절은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자, 이 구절을 읽는 이유는 전쟁은 주님께 속한다는 이 문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 앞에 낮아지고 회개함으로 죄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 겸손의 상, 회개는 회개하는 것은 겸손의 상징입니다.
자, 주님께서 주님 앞에 분들이 낮아질 때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당연히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그릇을 준비하시고, 그리고 그 안에 주님의 늦은비 영광으로 채우십니다. 성령으로 그때 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계속 봤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권능이 더 컸습니다. 탕자의 모습도 그 마지막 여정에서 아버지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용서하셨습니다.
자,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자, 주님께서 지시하십시오, 위해서 회개를 지시하며 겸손하고 낮아지라 말씀하십니다, 거룩함으로, 그리고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의 교만함과 거만한 자의 거만함은 날이 이르며 심판하신다고,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무너뜨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회개를 싫어합니다,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교만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얻고도 회개하지 못한다면, 지옥에 간다면, 영혼을 잃는다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지금의, 지금은 교회 역사에서 정말 깊은 깨달음의 시간입니다. 자,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오셔서 성령 충만하게 내주 하시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오셔서 여러분들에게 내주하시는 그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자, 시편 24편 8절입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의 능한 여호와로다. 자, 교회에게 이런 왕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즉, 전쟁이 왕께 속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전능하신 권능에 접속할 수 있고 대적과 싸울 수 있습니다. 자,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면 전쟁에 능하게, 주님께서는 전쟁에 필요한 권능을 갖고 계십니다.
자, 이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4절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경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아, 자, 이제 우리는 스스로 비하고 주님께 돌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온, 됩니다. 죄로부터 돌이켜야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하고 온전히 거듭나야 됩니다.
거듭난 후에 이제 주님께서 성령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자, 삼손의 마지막 전투, 탕자의 마지막 여정, 다윗의 담대함이 모든 것은 주님의 영으로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기를 원한다면 정말로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런 겸손한 회개를 통해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자, 오늘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사실 오늘은 그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마 다음 시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가 실제로 실천해야 되는 일들에 대해서 아마 말씀을 전달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자, 자, 이제 하나님의 성령이 자, 여러분을 전쟁으로 이기시기 원한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기도를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도를. 따라하십시오. 전능하신 주, 주 예수님, 오늘 완전히 주님께 복종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제 자신을 맡깁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허물과 악을 회개합니다.
존귀하신 주 예수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께 구하오니 제 마음에 들어 오시옵소서. 그리고 저의 주님이 되어 주시옵소서.
구세주가 되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의로움과 거룩함을 세워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저를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고 저를 인도하셔서 마귀의 공격에서 언제나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 저는 거듭났습니다. 아멘..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