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휴거를 준비시키는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데이비드 오워 선지자님의 메세지입니다.

12/6 선지자님 특별 말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1

(Crucifying the Flesh)

크리스천 구원의 벽을 세우는 것에 대해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생기는 구멍에 대해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매일 일상생활에 여러 가지 공격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부적, 내부적 공격입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일상생활에서의 크리스천 구원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천 구원의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 것에 대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야기되었었습니다. 여러분의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어떤 점들이 구멍을 생기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점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어떻게 크리스천 구원의 벽의 깨진 부분을 다시 다듬는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의 예배드리는 곳 주위에 튼튼한 성벽을 세우고 높은 망대를 세우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시지요? 강한 성벽과 높은 망대는 파수꾼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심지어 공격의 시간 또한 살핍니다. 지금은 항상 공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오늘 보게 하심으로써 여러분이 찬양하는 곳을 재정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은 바로 여러분의 마음의 제단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크리스천 구원에 대해 생기는 구멍들을 보았고, 그리고 여러분의 크리스천 구원의 기초를 반석에 두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런 메시지를 주신 것은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많은 새 신자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반석에 세울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구원을 반석에 세워야만 그들의 크리스천의 구원의 기간이 정해지고 거듭난 여러분의 구원의 질이 정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석에 대한 기초의 가르침,

즉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지 등

이런 가르침을 이 새 신자에게 가르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 그리고 천국 입성에 있어서 무엇이 벤치마크인지 등 기초에 대한 구절은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지금 천국에 대한 벤치마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크리스천들의 마음과 혼에 굳건히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것은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은 여러분에게 절대적으로 분명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성이고 이것이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인으로서 들어갑니다. 주님이 구속자이시며 예수님께서 은혜의 언약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으며 이 언약은 모세의 율법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천의 구원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이신 반석에 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은 절대로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목사이든 모든 사람들이 음란죄 같은 것에 넘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회개와 거룩함을 오랫동안 설교했지만, 지금은 돈과 번영 복음, 거짓 교리에 있는 것은 그들의 구원의 반석이 바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우고 있는 크리스천의 구원은 높고 무거운 천국에까지 닿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획기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크리스천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천 구원의 라이프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노아의 날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르기를 주님 오시는 날이 마치 노아의 날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이것은 매우 심각한 가르침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가르침은 교회의 거룩함이 중심이었습니다. 거룩함이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이었습니다. 교회의 의로움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이 의로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쳐 드리려는 것입니다. 의로움이 영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부패하기 쉬운 다른 종교와는 다른 점입니다.

크리스천의 구원은 무덤을 넘어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영생의 희망입니다. 그 말은 구원의 수명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로움만이 크리스천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강력한 말씀입니까?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부족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오늘은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바로 십자가의 교리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와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복음의 핵심이고, 보혈은 십자가에 대한 권능입니다. 오늘은 많은 성경 구절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여러분을 안내해 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온 이유는 2017년 1월 15일 주님께서 환상 중 하늘로 들어 올리셨고 교회가 좁은 길로 와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구 크기의 커다란 구름이 열렸고 영광스러운 계단이 나타났고 교회가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주님과 교회와의 대화에 있어서 중심적인 개요입니다.

이 메시지를 2018년에는 홍콩, 말레이시아, 포르투갈, 아직 주님께서 저를 어느 나라로 보내실지 잘 모르지만, 아마 이 정도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채널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교회가 들어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육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5장 22~25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그리스도의 사람은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탐심을 못 박은 자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을 말하는 거듭난 사람은 그들의 죄성이 많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육의 정욕을 못 박은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굉장히 깊은 설교가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8절입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굉장히 강력한 말씀입니다.

전 세계에서 듣고 계시는 여러분, 오늘 교회에 주시는 중요한 말씀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구원의 언약의 전달자, 은혜의 언약,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는 언약으로 우리에게 오셨을 때,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의 언약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복음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십자가는 메시아가 가져오신 은혜의 언약의 사명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복음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육과 영 사이에는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기든 여러분을 지배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천국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은 영의 사람인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영적인 구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릴 것은 우리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 우리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를 그날에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되면 우리는 누가 거듭난 자인지 알게 됩니다.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는 거듭났습니다, 나는 거듭났습니다.’라고 말을 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날에 누가 진정으로 거듭났는지 알게 됩니다.

지금 죄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음에서 해방된다면 여러분을 지옥으로 이끌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에 엄청난 배교와 타락을 보는 이유는 크리스천들의 육, 교회의 육에 대해서 사실 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이 지금의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들이 그들 마음대로 옷을 입고 있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그들 마음대로 행동을 하고, 교회에 낙태가 있고, 발가벗고 찬양을 하고, 음란죄가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 육의 행동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육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거짓 교리를 가르칩니다. 주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경외한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천국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중심적인 가르침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입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여기에서 육을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새로운 피조물은 우리입니다. 옛사람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완벽하게 죄성이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그때는 너희가 죄의 종이었지만 보라, 너희는 거듭났다. 지금은 새 피조물이 되었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지금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면 여러분의 신분은 바뀝니다. 여러분이 과거의 죄성을 버리게 되면,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주인이 생깁니다. 그 이름은 주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은 의로움의 종이 됩니다. 여러분의 죄성은 더 이상 우리를 통제할 권한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구원의 정의입니다. 거듭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깨끗하고 순결한 복음입니까?

육을 죽이는 중요한 의미는 요한계시록 3장 21~22절을 보십시오.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동은 이기는 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크리스천 삶에 있어서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벤치마크, 잣대는 오로지 이기는 자만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육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입니다. 아마 오늘 교회는 거듭날지도 모릅니다.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기는 행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의 대적을 이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통해, 어린 양의 보혈의 권능을 통해 결국 그들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 이기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합니까? 이것이 바로 천국 시민의 특징입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입니다. 육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더 깊은 대화로 들어갈 것입니다. 어떻게 현대의 믿는 자들이,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고, 다른 교회 사람들이라도, 거듭나지 않은 성도라도, 거듭난 성도라도, 이 엄청난 사역회 성도들이라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 사역회 성도들이 지금 듣고 계시지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듣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육을 이기는 것의 중요성이 무엇일지 오늘 그 계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대적은 바로 우리 육입니다. 영적인 교회가 영적인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육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육은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구원에 있어서 가장 큰 대적은 여러분의 육이라는 것을 이제 알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육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육의 죄성 말입니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이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거듭난 자들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구원을 예언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제 소개 부분을 마치면서 우리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을 주님께서 교회에 알려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과 크리스천으로써 여러분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관련 성경 구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부터 보겠습니다. 우리가 도전할 수 없는, 완벽하고 가장 높임을 받기에 충분하신, 가장 완벽한 예가 되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장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나, 현대교회 성도들, 직장에서, 로펌에서, 대학생이나 의과생이거나 의과대 교수나 선생이거나 간에 주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교통하며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음에 대해 알리시고 성취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교회에 가르쳐 주신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가장 좋은 예는, 가장 좋은 선생은,

십자가 그 자체이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못 박히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믿는 우리들에게 메시지의 나팔을 불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사라진 현대교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지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그들은 못을 박을까요?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육을 못 박도록 도와주실까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것보다 더 좋은 예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7~46절입니다. 메시아의 못 박힘이 시작된 곳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현대교회에 주시는 지시입니다. 십자가에 육을 못 박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현대교회에 알려 주십니다.

마태복음 26장 37~46절입니다.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메시아께서 고통을 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집중해 보십시오. 여러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반복합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킹 제임스 버전으로 읽겠습니다.

39 조금 멀리 나아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사랑하는 여러분, 얼마나 파워풀한 말씀입니까?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여러분.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 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니라.

그다음 예수님은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의 핵심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메시아의 십자가 처형, 메시아의 미션의 고통을 보는 것, 이것이 오늘의 핵심 구절입니다. 이것은 현대교회에 주시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여기에 많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1. 메시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셨을 때, 갑자기 엄청난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죽기까지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슬픔이 왜 그렇게 크고 고민되셨을까요?

여기에서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지금 메시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열정을 보여주시기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져오신 십자가의 구원을 보여 주시고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메시아께서 드디어 진정한 은혜의 언약을 드러내실 시간이 되었을 때, 천국으로 인도할 진정한 구원을 드러낼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매우 흥미로운 점을 여기서 발견할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37절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육의 십자가 처형을 보여 주실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모두를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고, 오직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만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4절로 가 보겠습니다. 왜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만 데리고 가셨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4절입니다.

제목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시다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입니다.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태복음 26장 36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십니다. 메시아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그리스도의 열정을 나타날 때가 되었을 때, 교회에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자를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들만 겟세마네 동산으로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데려가셨던 것이 아닙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오직 메시아의 영광을 본 사람들, 메시아께서 가져오실 구원의 영광을 본 사람들에게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감추어져 있을까요?

그것은 감춰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교회가 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직 오늘 메시아의 영광을 본 사람들, 변모를 본 사람들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오직 메시아의 영광을 본 사람들, 메시아께서 가져오실 구원의 영광을 본 사람들에게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드러내셨던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오늘 메시아의 영광을 본 사람들, 변모를 본 사람들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시간이 되었을 때, 메시아의 궁극적인 사명, 이 땅의 구원을 이루실 때가 되었을 때, 마음이 너무 고민스러워 죽기까지 포기할 지경까지 왔던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께서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열정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메시아께서도 너무 고민스러워 포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크리스천 구원의 보물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말씀하시길,

“나의 아버지,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크리스천의 구원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여기에 원래의 의미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메시아에게도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어느 순간 예수님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또 말씀하시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것은 죄의 영원함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가 그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것은 정말 무거웠습니다.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주님께 쏟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죄 말입니다.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엎드리어 울면서 기도하셨습니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견디기 어려워도,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이것은 너무 무거워 나의 뜻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제가 감당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오르셨고 그것을 마치셨습니다. 끝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씀하시길, 이것은 메시아에게 너무나 어렵지만,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메시아에게도 그렇게 어렵지만, 인간의 구원을 영원히 주시기 위해서,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메시아에게도 그렇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원이라면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교회는 하나님 아버지께 육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거부하느냐 말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교회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교회에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육을 못 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기에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고 우리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것이 어렵고 벅차지만, 고통스럽지만, 모든 진노가 나에게 다 쏟아지지만, 나는 감당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뜻이기에 저는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정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보면, 에덴동산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는 즉,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교회가 아버지의 계명에 온전히 완전히 순종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창세기 2장 15~17절입니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냅니다.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세기 2장 15~17절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보암직하다는 것은 눈에 탐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십시오. 불순종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이 잔이 너무 무겁다고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동산입니다. 아버지께 울부짖었습니다. 이 잔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께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님께 부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의 모든 부정을 지셨습니다.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그 정도의 무게의 상태라면 이 세상에 짊어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온 우주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슬픔과 고민이 엄청나게 무겁고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시길, “저는 감당할 수 없으나, 아버지여,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뜻이라면 제가 감당하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거절당했던 아버지의 뜻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요?

왜냐하면, 은혜의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오셨을 때, 진정한 십자가의 언약을 보여 주실 때가 되어 변모의 영광을 본 세 명의 제자만 겟세마네 동산에 데려가셨습니다. 그들만이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미션을 이해하고, 깊은 영원한 계시를 이해하고, 그가 누구신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창세기 2장 6절에서부터 3장 6절까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뜻의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 그러면 천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절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이제 겟세마네 동산에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원이면 하겠나이다. 아버지의 뜻을 회복하겠나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육과 영의 사이에 계속되는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고 아버지의 뜻이면 육을 못 박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께서 요한복음 19장 28~30절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왜 그렇게 하셨나요? 왜냐하면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오늘 끝났다고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끝냈으니 이제는 교회가 육을 못 박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언약의 중보자께서, 마음에는 원하지만, 육신은 약하도다. 육이 두려워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육과 영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영은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육은 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육의 연약함을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 육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육의 연약함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교회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완벽하게 순종하는 본보기입니다. 순종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제 영원한 천국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합니까? 이제 우리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10절 그리스도의 열정입니다. 메시아의 고난, 육을 십자가의 못 박음을 교회에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방법, 오늘날 교회에서 보는 배교를 버리는 방법입니다.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이 구절에서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께서 얼굴을 땅에 대고 순종하셨습니다.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이시면서도 그 고난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순종입니다. ​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현대교회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의 동산에서 교회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의 사망의 불순종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거절되었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입니다. 의로움의 동산입니다. 순종의 동산입니다. 고난의 동산, 자기부인의 동산입니다. 이것을 교회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의 보물입니다. 언약의 구원입니다. 영생의 언약입니다. 이것을 지킨다면, 자기 부인에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온몸과 마음을 다해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의로움의 동산입니다. 거절의 동산입니다. 겟세마네입니다. 주님께서는 현대 교회에 육의 못 박음에 대해 가르치시기 위해 자신을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8~30절입니다.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다시 말해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죄의 대가가 치르진 것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변모의 산에서의 자세한 대화는 나누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변모의 산에서 하신 지시는 말씀하시길,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면, 여기서 현대교회에 엄청난 심각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십자가의 구원, 은혜의 구원, 성령님의 구원, 그것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동일한 것이며 그것은 완전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는 현대 교회는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요? 여자들의 옷차림이 그런 것인가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 돈 사랑, 거짓 가르침, 죄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뜻인가요?

모든 그런 죄와 그런 행동들은 에덴동산의 성격입니다. 죄의 동산의 특징입니다. 이 세상 쾌락의 동산, 불순종의 동산, 그룹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지키게 한 동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동산입니다. 심판받게 될 죄의 심판의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남은 자만 데려가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메시아의 영광을 본 세 사람만 데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영광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 박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못 박지 못합니다.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쓴 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은, 크리스천의 구원을 지키는 자는 쓴 잔, 주님의 쓴 잔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기 때문이 가족에게 거절당하는 잔입니다. 친구에게 당하는 거절, 직장 인터뷰에서, 은행에서, 레스토랑에서 그런 옷차림 때문에 거부 당하는 쓴 잔입니다. 여러분을 거절합니다. 거절의 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잔, 거절의 잔, 쓴 잔을 우리는 나누어야 합니다.

쓴 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셨던 그 쓴 잔, 이상하게 보이는 잔, 저 사람 이상하게 보인다는 잔, 금식하고 옷차림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이 세상에 이상하게 보이는 잔입니다. 금식의 잔입니다. 육을 못 박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실 교회에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현대 교회 이 세상에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교회에서 겪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예수님의 잔보다 덜 치명적인 것입니다.

유혹 말입니다. 보십시오. 메시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인간의 모든 죄,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의 죄까지 지셨습니다. 엄청난 세대에 걸친 죄와 부정을 그가 지셨습니다. 엄청난 무게와 고통을 통과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이 예수님께 부어졌습니다. 그 모든 것이 메시아께 부어졌습니다. 그 모든 죄가 너무 커서 메시아께서는 거의 포기하려고 하셨습니다.

메시아가 누구신지 예를 드리겠습니다. 메시아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였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우주의 기초를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심지어 우주의 가장 무거운 행성까지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엄청 무거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죄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죄를 메시아께 넘기지 않는다면, 즉,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메시아께 넘기지 않는다면, 어떤 교회라도, 어떤 크리스천이라도 겟세마네에서 보여 주신 메시아를 따라 가지 않는다면, 그 죄는 너무나 무거울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무거워 여러분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한 말씀입니까? 죄의 무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온 우주의 행성을 지신 분이시지만 죄의 무게로 거의 포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 그것이 온전히 교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거룩함의 옷을 입고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에서 행해야 합니다. 의로움과 좁은 길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버지의 뜻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회복된 교회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매우 중요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에서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십자가 못 박힘을 통해 교회에게 주신 메시지는 십자가를 통해 그것은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를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어제 말씀 중에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으셨을 때 그의 메시아의 공생애 시작부터 그는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것을 수정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매우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매우 분명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고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명이 교회에 선포되었는데 거기에 불순종이 들어왔습니다. 불순종이 하나님의 마스트플랜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대가와 모든 것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15절 이하와 창세기 3장 6절에서 우리는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께서 오셨을 때 메시아께서는 사실 그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거기에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두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의 뜻을 주셨는데 즉,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에덴동산에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 청사진에 디자인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종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로운 삶은 그 당시에는 순종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는 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에 사망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 완전히 순종을 하면 여호와 엘로힘은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순종하면 영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나무가 에덴동산에 있었던 이유입니다. 동산 나무는 생명나무에 포함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여러 번 가르쳐 드렸습니다. 창세기 3장 21~24절을 보시면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타락한 사람이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사실 사람이 타락했을 때,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에 접근해서 영생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생명나무에 뭔가가 있어서 인류에게 영생을 준다는 말입니다.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듣고 계시는 전 세계 여러분,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에 대해서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죄인이든 아니면 의롭게 사는 사람이건 간에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영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3절입니다.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절이 목표 구절입니다.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러분, 저라면 생명나무의 길에 밑줄을 치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교회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래 마스터플랜을 보시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은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도록 창조되었었습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걸었을 것입니다. 사망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순종하는 사람은 온전히 순종하여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에덴동산의 구조를 보십시오. 에덴동산에는 다른 나무가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이 첫 번째 단계를 거칩니다. 이 단계가 여러분의 삶과 영생에 관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지지 않았고 인류는 주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단지 다른 나무에 있는 엄청나게 맛있는 실과를 먹으며 주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순종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의 계획은,

다음 단계는 인간에게 24절에 나오는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가도록 허락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4절의 의미는 생명나무의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생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케냐는 엄청난 기적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일에는 연합예배가 있는데, 수백만 명의 모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한 제단에 모일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모여서 치유 감사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11월 19일부터 일어난 치유의 기적을 축하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선지자님에게 치유를 선포하도록 하셔서 많은 장애인들이 치유받았습니다. 눈먼 자들이 보게 되어 감사 집회가 있을 것입니다. 완전한 장애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를 창조하신 원래의 청사진을 본다면, 거기에는 질병이 없었습니다. 사망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주님께 완전히 순종한다면 이 길을 통해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길이라고 24절에 나옵니다.

그 길이 바로 영생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장애 아기 조키의 치유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제 처음으로 앉을 수 있었고 일어났습니다. 그 2년 4개월 된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뼈의 모양과 길이가 짧아 장애였다는 것이 의사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런 아기가 이제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주님께서 2017년 11월 19일 치유를 선포하라고 하셨을 때 (환상 중) 생명나무 잎을 따서 주신 것은 여러분은 들어서 익숙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만국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생명나무의 디자인은 영생 즉,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지 않는다면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에 갈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영생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했을 때 두 그룹을 두시어, 그 두 그룹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만 머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길을 막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했을 때, 이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말씀하시길,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인, 타락한 사람,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생명나무로 가는 것을 막으셨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이 생명나무 잎을 먹으면 영생하는 것이라는 것이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은, 영생으로 가는 이 길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 그 길은 영생으로 가는 길입니다. 생명나무는 파라다이스입니다. 그래서 영생이 있는 곳이며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께서는 수정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발생한 불순종을 수정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우 분명히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스도 메시아께서는 그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완전한 순종의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사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심으로,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에게 완전한 순종을 다시 가져오실 수 있었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는 이유는, 교회는 지금 이 시간 세상의 지도자가 되었어야 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빛을 발하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세상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했어야 했습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보여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 낙태를 보는 이유는 철야예배 후 아침에 보면 콘돔이 있고 밤에 두 세명이 주차장의 차 안에 있습니다. 여기 나이로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습니다. 동성애가 교회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주님께서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했다며 거짓말로 여러분의 돈을 갈취하는 이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거짓 복음이 미국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이유입니다. 벌거벗음이 교회에 있는 이유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거룩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는 이유는 교회가 육을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십자가는 엄청난 십자가였습니다. 교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히심은 교회에 심각한 지시를 주십니다. 그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메시아의 십자가 못 박히심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2절입니다.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오늘은 누가복음을 봅니다. 저번에 마태복음을 읽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보는 메시아는 우주 전체를 창조하신 우주의 왕이시며 지구를 운반하시는 분이시고, 지구의 기초를 세우시고 우주를 운반하시는 메시아이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방법으로 메시아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경배하는 메시아는 작지 않고 매우 매우 강력하십니다. 우리의 주 메시아께서 저를 보내시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고 그분은 우주의 왕이십니다. 우주를 창조하셨고 우주를 감시하시고 지구 전체를 보십니다. 은하수와 수조개의 별들, 어떤 별들은 지구보다 큰 별을 창조하셨는데, 어떤 태양들은 수십억 배나 지구보다도 크고 무겁고 대단합니다.

12년 전에 예언이 작년 8월에 성취되었고 중성자 별의 충돌은 창조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언 말씀이 자세히 그리고 놀랍게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절대로 갈 수 없는 거리 8조 이상의 거리에서의 충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을 때 우리는 그 중성자별 하나의 무게가 지구의 2백만 배나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온 우주를 다 창조하신 메시아께서 이 모든 우주를 짊어지시는데 절대로 불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것을 다 창조하시고 제자리에 다 두셨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감당하실 때, 여러분은 메시아가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처음으로 죄의 무게 때문에 거의 쓰러질 뻔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어제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죄를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죄는 무게가 있습니다.

죄의 무게 때문에 예수님은 거의 포기하실 뻔하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거의 포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우주를 운행하십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은 나에게 너무 무겁다.”라고 하셨습니다.

간단한 죄인 거짓말이라도 그 죄의 무게는 엄청납니다. 메시아께서는 이미 그 죄를 짊어지기로 하셨습니다. 죄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께서는 순결하고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우리의 죄를 지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니 믿는 자들이여,

죄를 가지고 장난치지 마십시오.

죄는 무게가 있습니다. 죄의 무게는 엄청납니다. 죄의 무게는 너무 엄청나서 여러분을 지옥으로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지심에 동의하는 그에게 여러분의 죄를 맡기십시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2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교회를 못 박는 것은, 여러분이 교회에서 보는 음란죄, 찬양단의 미니스커트로 남자들이 다리를 보고 음욕을 품고, 그런 교회의 죄가 나이로비나 전 세계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나이지리아나 가나의 거짓 선지자들이 씨를 뿌려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이런 육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겟세마네에서 주신 지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처형의 동산입니다. 고난의 동산, 슬픔의 동산, 메시아가 고난을 당한 동산, 남은 교회인 세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가시어 그의 변모의 영광을 목격하였습니다.

저의 변모 또한 일어났었습니다.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처음은 키수무 집회 밤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리버사이드에 2017년, 비숍의 서품식에 앞서서 일어났습니다. 세 번째는 헬싱키에서였습니다. 모두가 웹에 올려져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얼마나 축복받은 세대이기에 모두 하나님의 변모를 보신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누군가를 변모시킨 것을 여러분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심지어 카메라에도 잡혔습니다. 얼마나 축복받았습니까? 여러분들은.

왜냐하면 말씀하시길, 오직 변모를 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사람들만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들만 겟세마네 동산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가시어 그들만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변모를 보았기 때문에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십자가 고통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땀이 핏방울로 떨어질 정도로 기도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 주님은 성령의 힘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28절 이후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인간의 몸, 인간의 육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오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을 보시면, 욤키푸르( 속죄일 )에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곳 말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희생제물을 드리는데, 하나는 자신의 죄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위합니다. 그러고는 나옵니다. 그 당시에는 동물의 피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했습니다.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옷을 입고 오셨고 왕으로 죽으셨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오셨다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기에 겟세마네에서 아버지, 마음이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메시아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셨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었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회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덴동산에서의 교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녹, 창세기 5장 21~24절에서 에녹은 아담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아버지의 계획인 순종과 의로움이 잘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에녹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온전히, 완전히 순종하면 죽음을 보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에녹은 더 이상 있지 않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데려감을 당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아담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에녹은 순종을 온전히 하였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것이 아담의 죄 이전의 원래 플랜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것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려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의 순종을 회복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죽더라도 온전한 순종을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메시아께서 강력하십니까? 심지어 메시아께서 인간의 육을 입고 오셔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 잔은 메시아가 지시기에도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고 하시고는 육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메시아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나온 것입니다. 메시아의 진정한 미션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썩어 없어질 인간과 영원하신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약한 육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육은 약합니다. 처음으로, 약한 육을 하나님께 연결하신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뜻과 연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과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하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약한 인간의 중보자 말입니다. 인간의 뜻을 천국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연결하신 것입니다.

그는 자연적 인간 형태의 그리스도를 초자연적인 영적 형태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는 육을 이기셨습니다. 하지만 두 개를 연결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23~24절의 길을 여셨습니다.

즉,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닫혔습니다. 그것을 지금 주님께서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6~41절을 다시 봅니다.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죽을 정도로 고민하셨습니다. 왜 얼굴을 땅에 대셨는지 우리는 압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향한 엄청난 경외를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엄위하신 법이 예수님께 공포로, 아버지의 진노,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주님께 쏟아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에 얼굴을 대신 것입니다.

계속 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깨어서 기도하라 그러면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보는 지금 전 세계 교회에 있는 가장 큰 죄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움의 삶을 선택하고 깨어 기도하면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유혹은 교회가 그런 죄를 짓도록 하고, 죄는 여러분을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합니다.

우리는 죄의 무게를 보았습니다. 우주를 지으신 메시아께서 지금은 인간의 죄 때문에 거의 무너지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크리스천들이 교회에서 가볍게 짓는 죄들,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짓말, 거짓이 모든 곳에 있습니다. 항상 거짓말을 합니다. 이제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십니다. 이제는 여러분, 그럴 수 없습니다. 미혹에 빠지는 것을 걱정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죄로 연결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드디어 연약한 인간의 육신, 메시아의 연약하신 육신을 마음이 원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으로 연결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썩어 없어질 교회를 영원한 하나님의 뜻으로 연결하시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었던 하나님의 뜻 말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메시아의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9장 28~30절에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에 항상 온전히 순종하도록 교회에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아 자신께서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교회는 십자가가 쉽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메시아께서는 너무 고통스러워 우셨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아셨는데 말입니다. 메시아께서는 그 어려움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거든 그냥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현대교회는 그렇지 못합니까? 친구를 잃으면 어떻습니까?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면 어떻습니까? 승진이 안되면 어떻습니까?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냥 거룩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준하는 한 여러분의 상사가 내일 해고를 시키더라도 상관하지 마십시오. 사무실에서 많은 성적인 압력이 있을 것입니다. 승진을 위해 음란죄를 저지릅니다. 그냥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을 잃더라도 괜찮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죄의 무게를 알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어떤 고통이라도 상관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슨 고난이라도 받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데 먼저 성적인 죄를 짓고 직장을 구합니다. 그런 싸구려를 사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그 길을 이미 교회에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그 길이 여러워 보입니다. 3년간이나 직장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면, 저는 계속해서 이 고통을 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승진하기 전에, 큰 계약을 하기 전에, 불법을 같이 저지르면 10프로를 주겠다. 그런 것들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악마의 속임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교회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하시길, “아버지,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잔을 저에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이것이 아버지의 온전한 뜻이거든 저는 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 서 계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에덴동산은 고통의 동산입니다. 자기부인의 동산입니다. 의로움의 동산입니다. 거절의 동산입니다. 미니스커트 입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영생입니다. 직장을 잃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은 순종의 동산입니다. 우리가 본 에덴동산은 죄의 동산입니다. 불순종의 동산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동산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션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6장 9~13절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셨을 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 오신 미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신 미션입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 예수님께서 명하시고 지시하신 대로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교회의 진정한 정의를 보았습니다. 그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교회가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순종으로 들어간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메시지인 십자가 처형으로 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으로 나간다면, 교회인 크리스천들로부터 보는 것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뜻의 본성은 교회는 이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할 때 그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완벽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거룩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자로써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의롭습니다.

4.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대적이 여러분에게 죄를 짓게 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들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생으로 인도하고 대적은 지옥으로 인도합니다.

5.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를 거룩하게 인도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4절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을 음란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죄에 빠지면 여러분의 신분이 낮아집니다. 여러분은 사무실에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존엄성이 다시 가동되어야 합니다.

6.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정당해야 합니다.

7.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에 대해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8.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언제나 부패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영생을 보십시오. 여러분.

9.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사람의 뜻에 반대 ( antagonistic) 됩니다. 하나님의 뜻, 마음은 언제나 원하지만 육신은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 두 사이에는 충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언제나 사람의 뜻, 세상에 반대가 됨을 봅니다.

10.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명에 심각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거룩하고 의로우십시오. 이 계명들을 은혜의 계명으로 교회에 주셨습니다.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보십시오. 어디서든지, 사무실이든 여러분이 영생으로 가고 있는지 보십시오. 이 걸려오고 있는 전화를 받으면 영생으로 갈 수 있는지 보십시오. 이 여자, 이 남자가 유혹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전화를 받으면 아마 부도덕을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전화가 내 영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말입니다.

11. 하나님의 뜻은 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 경외입니다.

12. 하나님의 뜻은 영원한 법입니다.

13. 하나님의 뜻은 12제자 중 오직 세 제자인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에게만 드러내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시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회개하는 크리스천이라면 여러분은 죄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뭔가를 했는데 죄라는 생각이 들면 즉시 회개합니다.

15.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순종으로 인도합니다.

16.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 안에 주님 경외로 인도합니다.

17. 하나님의 뜻은 주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합니다.

18.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거룩하게 하여 핍박을 견디게 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입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키워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욕되게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이 거듭났고, 그들은 여러분이 거듭난 것을 알고 있는데 여러분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세상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신문에 나오는 스캔들을 보면 목사가 죄를 지은 것을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압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욕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 온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이사야 53장 11~12절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잔,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던 잔입니다. 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이사야 53장 12절입니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시고는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기를 치유하신 주님께서, 그 아기의 발은 이제 5일 되었습니다. 웹에 다 올려져 있습니다. 이번 일요일 치유를 축하할 것입니다. 2년 4개월 된, 땅에서 기던 아이를 일으키신 그 강력하신 메시아께서 말씀하시길, 어떻게 자기의 생명을 주셨는지, 자기 영혼을 버리고 사망에 이르게 하셨으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고 범죄자를 위해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순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 현대 교회에게 영생으로 가는 길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입니다.

11절을 보시면,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몇 구절을 더 보고 이 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이

네게서 지나가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한 잔입니다. 이 잔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0장 20~23절입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제 잔에 대해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제 여러분은 잔을 보십니다. 두려운 잔입니다. 왜냐하면 물으십니다. “이것을 마실 수 있느냐?“ “네”. 마침내 그렇게 대답합니다. “교회가 이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아버지에 의해 결정된다.” 천국의 계획에 의해서 말입니다. 어느 한 지점에서 여러분은 정말 이 잔을 마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장 10~12절입니다.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에 잔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 마셔도 될까요? 아버지가 주신 잔을 말입니다.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이제 이 잔의 성격에 대해 소개하십니다. 메시아가 들은 이 잔 말입니다.

이사야 51장 16~17절입니다.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이사야 29장 9절입니다.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여기에도 잔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입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귀하신 여러분, 잔이 동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잔을 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교회가 다 마셔야 하는 잔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을 선택한 자들은 말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교리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적 뜻에 들어갈 수 있는 육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뜻 말입니다.

잔이 있습니다. 교회가 마셔야 하는 잔입니다. 현대교회가 마셔야 할 잔, 주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잔입니다. 주님께서 마신 그 잔, 여러 번 말씀하신 쓴 잔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거부의 잔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때, 이 땅, 이 세상에서는 우리와 함께 기뻐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여러분을 사랑할 리는 없습니다. 이 지구는 여러분과 함께 축하할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핍박할 것입니다.

단지 거룩하게 살면, 거룩한 옷차림을 하면, 사무실에서 아무도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입고 몸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부패를 거절하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힘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아무도 여러분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마신 잔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선택한 육을 죽이는 잔, 반드시 마셔야 하는 잔, 예수님의 쓴 잔, 십자가의 쓴 잔, 예수님께서 혼자 바리새인에 대해 거룩함을 걸은,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싫어한 그 잔입니다.

전 세계 여러분, 초현대화된 도시에서 거룩함의 길을 걷는다면, 모든 시스템이 여러분을 대적할 것입니다. 외로움의 잔입니다. 쓴 잔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선택한 잔입니다. 보십시오. 현대 교회는 그 잔을 원하지 않습니다. 쉬운 삶을 원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보십시오. 쓴 잔 말입니다. 쓴 잔을 들고 동산에서 마시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23절입니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그런 다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도 같은 것을 말해 줍니다. 잔이 있습니다. 쓴 잔입니다. 하나님의 쓴 잔입니다. 교회가 반드시 마셔야 할 잔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여러분이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객이 계약 미팅에 여러분을 동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제 부정부패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우리 이윤을 나눕시다. 아니요. 저는 거듭났습니다. 저는 거듭났습니다. 저는 십자가의 쓴 잔을 마셨기 때문에 그런 것에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 우리가 보다시피 하나님의 쓴 잔을 마시셨을 때, 십자가의 고통 말입니다. 그들이 이 잔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포도주였습니다.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예루살렘에는 항상 특별한 잔을 준비하는데, 그것에는 몰약이 들어있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들에게 주는 강한 마약성분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을 무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고통을 죽이는데 사용됩니다. 예수님께 드렸지만 예수님은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무디게 하는 것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 고통을

온전히 통과하시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중하게 고통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51절을 보십시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그 고통을 실제로 다 느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진통제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의 완전한 고통을 통해 교회를 가르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받지 마십시오. 그냥 세상이 여러분을 거절하도록 놔두십시오.

왜 현대교회는 진통제를 십자가의 고통과 섞으려 합니까?

현대화된 기독교, 현대화된 구원, 현대화된 십자가 처형, 왜 좋아하게 만듭니까? 십자가는 언제나 바람직합니다. 여러분, 받지 마십시오. 진통제 술이 든 잔을 받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른 잔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준비한 잔입니다. 십자가의 감각을 없애는 잔입니다. 타이트한 옷을 입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쓴 잔이 바로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고통을 느낄 때가 바로 여러분의 육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제 거절하기 시작합니다. 그 잔이 아름다운 잔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다른 잔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더 잘 할 수 있습니까?” “펍에 갈까요?”라고 합니다. 간다면 코카콜라를 마십시오. 술을 마시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을 거절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구별되십시오.


지난주 주님께서는 저에게 크리스천으로서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크리스천 믿음에 있어서,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교리는 우리가 십자가를 우리의 삶에, 구원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매우 축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고통을 겪으실 때,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당하셨을 때, 믿을 수 없는 고통과 고민으로 거의 포기하시고 싶을 지경까지 갔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무거워 예수님께서도 거의 포기하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주님은 자신이 완전히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죄가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온전히 감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죄를 감당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보았던 고뇌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는 모든 일의 과정을 보시면, 거기에는 갈등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과 육 사이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육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때의 대화에서 현대교회에 주시는 엄청난 지시가 나왔습니다. 이 말씀을 나누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영광스러운 천국을 준비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교회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거절당한 하나님의 뜻이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대, 현대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가고 싶은 자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디 있든 간에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여러분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교회인 여러분에게 성경을 먼저 안내서로 주셨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이 시간 매우 중요한데, 육이 이 시간 교회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면 낙태, 찬양 리더가 목사들과 함께 같은 차에 있는 등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하심에 대한 이미지를 상관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누구도 주님을 보지 못하는 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거짓 예언과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들이 지금 교회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지금 이 시간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많은 분들은 내가 믿는 자로써 내가 정말 극복한 자인지 우리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은 원하나 육은 약하도다 “라고 하셨지만, 나는 정말 예수님께서 영이 육을 지배하신 그 교회인가. 나는 정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영이 육을 지배하게 하신 그런 교회인가?

여러분이 그렇게 되려면 오직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와 주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 아래를 직접 걸을 때만 가능합니다. 아시다시피 그 하나님의 뜻은 거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전보다 거룩해졌는지 분명히 알 것입니다.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을 보았고,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영생의 법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마태복음 6장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자연, 인류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온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 고통은 육과 영 사이의 싸움의 고통이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육의 의지, 죽어 없어질 사람의 뜻을 영의 의지, 영의 뜻에 일치하도록 연결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그의 미션에 대한 정의를 교회에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여러분의 삶을 보면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의 뜻과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의미는 “나는 드디어 바로잡기 위해 왔다. 아담과 하와에 의해 지어진 에덴동산에서의 실수를 다른 동산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육이 두려워하는 것,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등 인간의 뜻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과 영원한 하나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주님 경외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걷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규칙이라고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하게 하고 구속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은 사람들을 도와서 끝까지 견딤을 돕습니다. 여러분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견디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많은 크리스천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의 구원을 갖다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교회에 주신 지시사항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견디는 것, 순종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를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육을 못 박는 것은 순종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종은 에덴동산에서 잃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순종을 다시 회복했습니까?

예를 들면 누가복음 9장 23~26절입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구절은 사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육의 삶은 70-100년입니다. 120년을 살더라도 그 질은 어떠합니까? 그러니 70에서 100살을 산다고 하더라도 영생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여러분의 영혼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여기에 매우 분명합니다. 여러분.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말씀드릴 때, 육은 교회에서 성적인 음란을 너무 많이 하게 만들었음이 매우 분명했습니다.

제가 어떤 나라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을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그가 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시길, ‘왜 그렇게 물으십니까?’ 여자가 대답하기를, ‘제가 오랫동안 남편이 교회에 나오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교회에 왔을 때, 그날에 바로 새 여자를 만나 음란죄를 범하여 아기를 낳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스토리는 교회를 부끄럽게 하고 교회의 권위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영의 복종과 권위 아래에 육을 둘 때 교회는 하나님의 빛이 됩니다.

지난밤 주님께서는 환상 중에 그리스도의 빛인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딘가 집회 중에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어둠 속에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엄청났습니다. 그 빛은 너무나 거룩했고 의로웠습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의 빛이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시장에 있든 사무실에 있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장소가 여러분이 바로 빛을 발해야 하는 곳들입니다. 세상의 빛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의 역할이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가 세상보다 더 악해질 때 그 여자가 남편이 교회에 오도록 기도를 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만이 교회가 영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육이 죽지 않는, 썩을 것에서 썩지 않는, 부패하는 몸에서 부패하지 않는 몸으로 변화될 때 사망이 삼켜져 승리했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 죄를 이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죄를 담는 그릇은 육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실어나는 것은 육입니다. 본질적으로 말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죄를 이기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교회가 가지고 있는 정말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왜 믿는 자들의 딸과 아들들이 대학교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는 것일까요? 목사나 비숍들의 아들들은 더 심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기본이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신의 육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못 박아야 합니다.

어제는 우리 마가복음 15장의 잔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메시아께서 말씀하신 잔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잔을 중심으로 깊은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교회가 그 잔에 대해 정말 이해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에 오늘 열어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잔은 무엇일까요? 잔이 있습니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메시아께서 보여 주시는 잔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잔입니다.

그다음 교회가 마실 잔입니다.

오늘 잔에 대해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이르기를, 이것을 잘 이해하고 매일 마음 깊이 경작하는 오직 성숙한 교회만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겟세마네 동산에 그 잔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부터 보겠습니다. 제목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교훈입니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상상이 가십니까? 예수님께서 너무 피곤하시어 십자가를 지실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어 부르실 때 저는 계속 거절하고 도망 다니셨지만, 어떻게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는지를 보여 주셨을 때 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몇 장면을 보여 주셨지만, 그 당시 예수님께서 너무 힘드시어 십자가를 지지 못하셨습니다.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골고다는 해골이 있는 곳,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장소였습니다.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러한 향신료에 대해 이미 잘 알려 드렸습니다. 이 모든 향료는 성령님 하나님께서 다 제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기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약으로 뛰어났습니다. 그 말은 매우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쓴 몰약은 그것을 부숴서 액체로 만들면 약으로의 가치가 생겨 항생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박테리아를 죽여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골고다 해골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셨을 때, 그들은 쇠사슬로 때리고 너무나 심한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여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쇠로 머리까지 때렸습니다. 주님께서 이 장면을 보여 주셨을 때 저는 너무나 슬퍼 삼 개월 동안이나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을 메시아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장소에 오면 쓴 몰약을 섞은 신 포도주를 사람들에게 주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신 포도주와 몰약을 섞은 것입니다. 그것은 진통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형 당할 때 예루살렘에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처형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공공연히 이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수술대에서 사용되는 마취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소에서는 그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친척들이나 사람들은 그들이 불쌍해서 이것을 사 가지고 와서는 죽는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와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고 외쳤습니다. 가장 심한 형벌을 그에게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누구길래 그런 심한 처형을 원하는지 사람들은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잔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 잔에 대해 우리는 오늘 알아볼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있던 잔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이미 그 진노의 잔을 받으셨습니다. “이 잔이 바로 너에게 주는 나의 피이다”라고 하신 잔입니다.

이 장소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 진통제를 주었을 때,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 잔을 주었을 때 메시아께서는 이 잔을 거부하셨습니다. 이 두 번째 잔을 거부하셨습니다. 이것을 현대 교회에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메시아께서는 온전한 고통을 느끼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에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그리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의식적으로 전체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음의 최악의 상태로 죽으셨습니다. 같은 내용이 이사야 53장에도 나옵니다.

또 같은 내용을 여러분이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보시면,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메시아께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싶어 하셨으므로 지금은 풀코스로 죽으실 것입니다.

경감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겪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현대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겟세마네에서 주신 잔을 받고는 나중에 왜 예루살렘 여자들이 준비한 잔도(몰약을 탄 포도주) 받느냐 말입니다. 그 잔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교회가 고통을 참는 정도가 매우 약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그냥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하게 해 주는 교회를 다니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반대로 여기 말씀하십니다. “내 발자국을 따르려 한다면 세상이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현대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예루살렘 여자들이 준비한 다른 잔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통제 잔 말입니다. 왜 그렇나요? 여러분은 지금 십자가의 풀코스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을 못 박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거듭난 것은 알지만 여러분은 현대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금요일에 나이트클럽에 가서 우리는 콜라만 마십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영혼을 파괴시키는 사탄은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듭났다고 하지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세상에서 벌거벗고 다닙니다. 왜 크리스천들이 부도덕한 옷을 입고 다닙니까?

성경은 매우 분명히 말합니다. “보라, 너희 몸은 사신 바 되었다. 더 이상 너희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창녀의 몸과 섞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이는 육의 욕망을 영화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대교회의 목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설교는 달콤한 설교입니다. 육을 긁어주는 설교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름발이들은 아직도 절름발이입니다. 대적은 크리스천과 함께 교회에 있기를 원합니다. 거기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대적 자신이 교회에 미리 외침으로 그들이 복음에 면역이 되게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죄를 즐기고 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엄청난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부하셨습니다. “나는 두 번째 잔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하나님의 잔을 이미 받았다. 십자가의 잔, 겟세마네 동산의 잔을 받았다. 영생의 잔을 받았다. 왜 내가 지금 다른 잔을 받아 영생을 놓쳐야 하는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집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고통을 겪으려고 하셨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는 아주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것은 의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내려놓으신 것은 의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는 “나는 누가 그를 섬기는지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의도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셨고 그래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이기적인 승진을 포기하고 이기적인 희망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교회를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그들은 그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너무나 사랑하는 심각한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산에서 가르쳐주신 질문은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닌 너희들의 뜻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크리스천으로써 기도하고 있습니까?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마귀도 우리에게 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때로 교회에 있는 목사들도 돈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돈을 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아닌 다른 것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소위 축복이라는 것을 본다면 교회를 거룩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 오늘의 메시지로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관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대한 어떤 특정한 중요한 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잔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잔을 말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잔이 어떤 잔인지 계속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거듭난 자들은, 모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 잔을 마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0장 20~23절부터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제 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킹 제임스 버전으로 보겠습니다.

20 그때에 세베대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그분께 나아와 그분께 경배하며 그분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매 21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주의 왕국에서 나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허락하옵소서, 하거늘

22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하매

23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참으로 내 잔을 마시고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침례를 받으려니와 내 오른편과 내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니라. 다만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해 그것을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그것을 받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잔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마시신 잔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시신 쓴 잔, 고통의 잔, 슬픔의 잔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잔. 외로움의 잔, 거절의 잔. 그런 다음 교회에게 말씀하시길, 나의 이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잔을 교회 또한 마셔야 하는 잔입니다. 그 잔을 마실 것입니까?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은 이 어머니와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그리스도의 중요한 제자인 요한과 야고보입니다. 양육하면서 아들을 잘 키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부유해서 우리 자식들은 고통과 슬픔 없이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사회적 지위도 높습니다.

우리 가족은 평범한 가족이 아니고 특별합니다. 그러니 세베대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들은 바르게 잘 자랐으니 두 아들에 대해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주의 좌편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신 대답을 보십시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현대교회에서 하는 일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말하길, 우리는 좋은 집안에서 왔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는 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 자식들은 교육을 잘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의 주님의 보좌에 앉혀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품성은, 현대교회의 세대는 어떤 특정한 가치체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대답에 현대교회에 주는 강력한 지시사항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당시에 여자는 부의 축적에 대해 말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회에서의 성공에 대해 말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회의 성공 체계를 천국에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는 미국, 유럽, 호주 등 선진국에서 왔으니까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혀달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현대교회의 가치체계는 세상으로부터 빌려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무시하셨습니다. 무너뜨리셨습니다. 더 축적하는 것이 더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 앞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집에는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회 상태를 예수님 앞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매우 분명히 하셨습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성공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내 우편이든 좌편이든 내가 둘 수 없다. 시간이 되면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비밀이 알려질 것이다.”

섬김을 받는 것이 위대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섬기는 자가 더 큰 자입니다.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더 크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교회는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잔 앞에서는 이 세상의 룰을 적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현대교회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합니다. 개인 전용기 등 너무나 많습니다. ‘와 우리는 주님 앞에 잘 서 있는 거야’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들에 의하면 아프리카에 살지만 선진국에 가서 살면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주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설교를 할 때 씨 뿌리는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집회에 가기 전에 10만 유로를 먼저 보내라고 합니다. 개인 자가용 비행기에 연료가 필요하다고 돈을 보내라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분이 잘 알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 이런 일들을 한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니다. 이런 것들은 나의 뜻이 아니다. 이런 일들은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이 세대에서 섬김을 받는 것보다 형제를 섬기는 것이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3부

잔에 대해 들어가기 전에 이런 점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의 잔입니다.

주님 앞에 가장 큰 것은

1. 희생입니다.

2.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3. 섬기는 데 있어서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내 발자국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66장 1~3절을 보시면 잘 나옵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그렇다면 잔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잔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여기서부터 말씀을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이 잔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잔에 대한 장면, 이미지를 보여 주실 때 그것은 주님의 진노를 나타내셨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5절 우리는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잔은 주님의 진노를 나타내십니다.

메시아께서 마신 이 잔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 교회에게 마시라고 하신 잔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22.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할 수 있나이다, 하매라고 하셨습니다. 잔을 봅시다.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잔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예레미야 25장 15절,.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16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17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오늘 말씀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잔이 무엇인지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후 여러분은 이제 왜 주님께서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통과하셔야 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목적은 메시아께서 마시신 이 잔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이 잔이 무슨 잔입니까? 그리고 ‘너희가 참으로 내 잔을 마시고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침례를 받으려니와’​ 이것은 당연히 이 잔은 보혈의 침례입니다. 무슨 잔을 이사야가 마신 것입니까? 어떤 잔을 교회가 마셔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예레미야 25장 15~17절에 나오는 잔,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 메시아께서 마셔야 했던 잔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51장 17절을 보시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 잔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진노의 잔, 분노의 잔을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잔의 이미지에 대해 보시면 왜 메시아께서 포기하고 싶어 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51장 17절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이제 우리는 그가 말씀하시는 그의 진노의 잔즉, 아무도 마실 수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께서 말씀하신 그 잔을 심지어 예수님께서 다 마시셨다고 알려주시는 것을 분명히 봅니다. 주님의 분노의 잔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그리고 아직도 그 잔에 대해 밝혀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4장 9~12절입니다.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주님께서 잔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것은 진노의 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인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께서 이 잔을 손에 드셨을 때, 이 잔을 마시는 것을 두려워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 잔은 그에게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죄스럽게 만듭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말입니다. 아들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그를 죄스럽게 만들고 죄의 심판을 받게 합니까? 여러분. 크리스천 구원의 보물을 이해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지셔야 했습니다.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시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이 잔에 대해 열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0장 2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이제 여러분은 그 잔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진노의 잔은 그 잔이었다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진노의 잔. 그 잔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그 잔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견딜 수 없습니다. 절대로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완전히 부서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하나님과 다른 잘못된 방향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적이 오면 여러분은 주님께 뛰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돌아서시면 여러분은 끝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을 여러분은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잔은 방금 읽은 구절인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본 주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이 잔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잔은 역시 주님의 저주입니다. 이런 잔을 우리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잔을 주님께서는 다 마시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의 잔을 두려워하셨던 것입니다. 이 잔에는 하늘이 닫힙니다. 하나님은 그의 위에 하늘 문을 닫으십니다. 이 잔에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십니다. 얼굴을 가리시고는 하나님의 전체 진노를 부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영생의 천국의 문이 주님께 완전히 닫히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분리되었습니다. 영원 이후 처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잔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의 격리입니다. 이 잔으로 인하여 아버지께서는 얼굴을 가리셔야 했고 천국은 예수님 위에 닫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저주가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두려운 심판이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하지만 그 잔에 대해 더 충격적인 것은 그는 성령님의 뜻을 이 방법으로 성취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잔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진노가 집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봅니다.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가 이제 주님 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감당할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제 우리는 이해합니다. 이 잔은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본 죄의 대속물로 치르는 두려운 잔으로 이 잔을 마심으로써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 말입니다. 전 지구의 불법, 전 인류의 불법,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의 모든 죄 말입니다. 살인, 부정부패, 부도덕 모든 것 말입니다. 그는 죄가 없으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이 잔이 바로 그의 보혈이었습니다. 그 자신의 보혈을 부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셨던 것은 당연했습니다. 다 마시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잔을 너희도 마셔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제자는 이 잔을 마셔야 했던 것입니다. 질문을 드립니다. 이것이 주님이 마셨던 그 잔과 같은 잔일까요?

여러분. 주님께서 이 엄청난 말씀을 남은 교회에게 주시기로 하신 곳은 바로 겟세마네 동산이었습니다. 사실 감람산이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타임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심지어 장소까지도 특정한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왜 겟세마네 동산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여러분. 왜 그 장소로 겟세마네 동산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클라이 막스 장소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세 제자만 데리고 가셨는지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만 이제 메시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감람산에서 변모를 보았습니다. 눈보다 훨씬 더 희었습니다. 케냐 사람들과 전 세계 사람들이 이미 그 영광을 보았습니다. 거룩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왜 이 장소를 선택하셨는지 보면 먼저,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다윗 왕은 클라이막스가 되었을 때 그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다윗 왕도 그 같은 장소로 갔습니다. 다윗 왕은 투구도 쓰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세상의 가장 최악의 순간이 올 때, 십자가 처형의 순간이 올 때, 클라이막스가 올 때,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역시 단계를 거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왜 그려셨을까요? 우리가 잔에 대해 보기 전에 왜 여기를 선택하셨는지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에 말씀하시는 잔이 이 잔과 같은 것일까요? 메시아께서 드신 이 똑같은 잔을 교회에 마시라고 한 것일까요? 먼저 그 장소를 보십시오. 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을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거기에는 큰 감람나무가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 오랫동안 견뎠습니다. 왜 그런 감람나무가 성경의 상징인지 선지자님께서는 여러 차례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리듬을 가지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리듬은 하늘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그가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마다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물러나시어 천국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도우시고 공급해 주시어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계속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대중으로부터 물러나 계셨습니다. 항상 가셨던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여기가 바로 예수님께서 항상 대중으로부터 나와 가셨던 곳이었습니다. 주님을 조용히 만났던 곳이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던 곳입니다. 심각하게 아버지를 만난 곳이며 교제를 나눌 때마다 항상 이 장소로 가셨습니다. 다시 공급해 주신 곳이며 지시를 주신 곳이며 대화를 하신 곳입니다. 주님과 다시 연결되신 곳입니다. 여기가 바로 그 장소입니다. 용기를 주신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거룩하게 되는 곳입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되어 항상 주님을 만나 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을 만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어 주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너를 여기 이 장막에서 항상 만나겠다고 하시는 곳입니다.

여기가 바로 성전에 있는 장막에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여기가 바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클라이막스가 되었을 때 그는 여기로 달려오셨던 것입니다. 선지자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여기가 바로 메시아께서 안식을 취하셨던 곳입니다. 여기 누워서 아버지와 만나고 잠드신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휴식을 취하시고 안식을 취하셨던 곳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여기로 달려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의 침대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주무셨습니다. 구속자이시며 왕 중의 왕께서 말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도 익숙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살 때 최악의 상황이 와서 아파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기가 자던 침대로 갑니다. 자기가 누웠던 곳으로 갑니다. 사람들은 죽게 되면 보통 자기 방으로 돌아갑니다.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악의 상태가 올 때 주님도 곧 무엇이 닥칠지 아셨기 때문에 잠드셨던 곳으로 가기 원했던 것입니다. 주무셨던 침대를 찾으셨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절대로 아프지 않으셨어도 말입니다. 최악의 상황이 되면 가장 익숙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이곳으로 물러나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언제나 사역 중 대중으로부터 물러나시면 사람들은 항상 어디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도 어디에 가면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지 그 장소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 말은 메시아께서는 숨기를 원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장소로 가신 또 다른 이유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합니까? 그를 찾는 자들에게 숨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계신지 아는 곳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찾도록 말입니다.

그를 죽이려던 사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으셨습니다. 메시아께서는 발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부터 보시면, 메시아께서는 발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발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숨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숨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와서 찾았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사람들이 체포하러 왔을 때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0절입니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

그들이 찾기를 바라셨습니다. 메시아께서는 발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자발적으로 잡히셨습니다. 그 장소는 그 후 엄청난 장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오시기 전에 이미 그 잔을 보셨습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이미 보셨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서는 매우 침착하고 안정된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잔을 마실 때가 되었을 때,

주님에게는 처음으로 평강이 떠났습니다. 제자들이 보았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평강의 왕은 이미 평화는 사라지고 이제 고민스러웠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평강의 왕에게 평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분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가 없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를 누리면 거기에는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마이크로 초마다, 매 순간마다, 매 분마다, 매시간, 매일, 매주, 매달, 해마다, 십 년마다 느끼는 말 할 수 없는 그런 평강이 있습니다. 만약 표현한다면, 특별한 관계, 하나님 아버지와의 언약의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그런 관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메시아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우신 분이셨지만, 그날이 왔을 때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있던 기쁨은 사라졌고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기쁨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사라진 그런 모습을 제자들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과 말씀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물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에서는 그에게 있던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 하나님의 영생의 빛이 가려졌습니다. 겟세마네 동산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품성으로 가득했던 주님은 이제 하나님의 품성이 그로부터 소멸되었습니다.

고난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너무나 두려워하셨고 떨으셨습니다. 그의 슬픔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 풍족하고 충만했지만 이제 그것은 외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께서도 너무나 놀라 세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왔다 갔다 하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상황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잔을 바로 메시아께서 마시신 것입니다. 평강의 왕에게서 평강을 뺏어간 것이었습니다. 평강이 없어졌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3~44절입니다.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기도를 하러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가요? 영광의 왕, 평강의 왕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것이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왜냐하면 그 잔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시신 그 잔 말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6~29절을 보시면 압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그는 그 잔에 대해 많은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그 잔은 주님의 부서진 몸이라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그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 잔에 대해 모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잔에 대해 정말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명령이 내려온다면 나의 잔을 마셔야 된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지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교회가 마셔야 하는 잔을 보는 것입니다. 같은 잔일까요?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그는 그 잔의 내부에 예수님의 피, 메시아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피였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잔은 이사야 53장에서도 이 잔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시편 22장도 보십시오. 이 잔, 엄청난 잔, 믿을 수 없는 잔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말씀하시길, 이 잔을 마셔라. 이 피에 의해 침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12절입니다.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셨습니다. 5절과 10절에 그가 떨리신 이유가 나옵니다. 5절을 보면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는 십자가에 찔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양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0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는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어졌습니다. 완전한 분이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율법과 거룩함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떠나가게 하옵소서.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이 잔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 잔의 중요성에 대해 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십자가의 고통, 슬픔, 하나님의 심판, 저주가 있는 잔을 아셨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 잔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십시오. 제발 이 방법 말고 말입니다.” 얼마나 이 잔이 강력하고 두려운 잔입니까? “아버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제발 그 길을 따르십시오. 저는 못 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부서졌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간구할 때,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에 맞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껏 여러분이 간구했던 기도가 아버지의 뜻에 부합한 것이었나요? 그것들이 아버지의 뜻이었나요? 예수님은 이미 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슨 다른 방법을 찾으신 것입니까? 인간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이사야 53장에서 그에 대해 설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다른 길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잔을 가지신 오직 그를 통해서만 인류는 해방을 찾아내고, 구원을 발견하고, 영원을 찾고, 죄의 속죄를 찾으며,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문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입니다. 다른 길이 있습니까? 여러분? 다른 길이 없는데 왜 아버지께 다른 방법을 물었을까요? “다른 길이 있다면 이 잔은 내게서 떠나가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동산에 대해 깊은 것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고난이며,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명령은 이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저는 기억합니다. 2004년 4월 2일 저를 주님의 보좌실에 데려가셨을 때, 주님의 보좌 앞에 저를 세우시고 세례요한을 보내시고 산처럼 큰 영광이 보좌를 덮었습니다. 모든 것이 영광스럽게 변했습니다. 그가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전 세계에 이 환상에 대해 나누셨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환상에서 이스라엘에서 일어날 이벤트를 말씀드렸고 그것이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해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너무나 강력합니다. 성취될 오직 한가지 예언만이 남아 있는데 그 환상 중에 보여 주신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예언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그 환상 중,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나와서 말했습니다. 저에게 세계 모든 나라에 이르기를, 회개하고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어린 양께서 세상 죄를 지고 이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가서 그 길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모든 나라에 가서 전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례요한과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 환상에서 저는 왜 메시아께서 죽으셔야 했는지 물으셨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갑자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꿈에서는 주님이 여러분을 사로잡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로 진행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왜 죄가 많은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셔야 했는지 저를 궁금하게 하셨습니다. 왜 다른 방법이 없는지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걱정하지 말라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논쟁이 있는 사이, 하나님께서는 저를 어린 양이 엄청난 영광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에서는 보혈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너무나 저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환상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보여주시며 하늘로 데려 가시어 벤자민 네타야후 1기, 2기 모든 것을 보여 주셨고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2004년입니다.

그래서 다른 길이 있었냐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보았습니다. 이사야 53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것은 이미 선포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9장 7절도 그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오실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이셨고 그래서 그에 대한 예언은 그가 오시어 고난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인자는 고난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3일 만에 다시 성전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 자신에 대한 예언 또한 주셨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사야 9장 7절입니다.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는 이미 택함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구원자, 살아있는 떡이라, 산 돌이라, 생수이시라. 이 모든 것들은 그의 로드맵에 놓여 있었습니다. 왜 다른 길을 말씀드리겠습니까? 다른 길이 있습니까? 아버지여, 가능하다면 이 잔이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히브리서 10장 14절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이 잔을 보기도 전에 왜 이 잔을 마시기를 두려워하셨습니까?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오직 하나의 제사만 있다고 하십니다. 그가 바로 주님이십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입니다. 아버지,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 말고 그 방법을 하십시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말입니다.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 예수께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잔이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 아버지,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얼마나 이 잔이 두려웠으면 그랬을까요? 메시아께서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직 한 방법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 두려워서 할 수 없다고 하신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메시아께서 이 잔을 마시기를 얼마나 두려워하셨는지를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잔이 얼마나 두려운 잔이었는지 이제 여러분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지금 어떤 잔을

마시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5장입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

이 두루마리가 청사진이었습니다. 은혜의 언약의 청사진이었습니다. 죄성이 있는 인간을 구원할 언약이었습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

이가 바로 일찍이 죽임을 당한 합당한 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건축자의 청사진이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건축자의 마스터플랜이었다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다 아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이미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물으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저는 안 되겠습니다.” 얼마나 그 잔이 두려웠으면 그러셨을까요?

이는 현대 크리스천의 구원의 대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후로 여러분은 주님의 구원을 가지고 절대로 장난을 치면 안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다른 방법을 쓰십시오.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길이 없음을 하셨는데도 그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장 이하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알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라도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늘이 이 시므온에게 열렸다는 말입니다. 하늘은 시므온에게 밝히셨습니다.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이것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스터플랜에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그가 오시기 전에 이미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까이 간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엄청난 일입니다.

저도 2004년 4월 2일을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세례요한과 논쟁하는 것을 본 후 주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이것은 전에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보좌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다. 사실이다.”라고 하셨고 물으셨습니다. “나를 위해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후로 저는 지금까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므온은 그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더 이상 가르쳐 드릴까요? 두려운 잔에 대해서 말입니다.

각 나라에 있는 양들을 준비시키도록 얼마나 더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릴까요? 그 잔을 들기를 두려워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이 네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다른 길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 방법을 하십시오. 저는 안 되겠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러셨겠습니까? 그 잔을 교회가 마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7절입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 말은 저는 이제 죽을 준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그는 구원이 만민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잔 때문에 아버지 다른 길을 찾으십시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주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크리스천 구원의 대가,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장난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더니즘, 현대 크리스천들이 오늘날 가지고 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내 오른 편에 있는 내 아들아, 이 자들은 너무나 사악하다. 이리로 올라오라. 노아의 때처럼 지구를 심판하고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 이 세대가 무엇을 한 것입니까?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인에 대한 계시를 위한 빛과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입니다. 시므온은 그가 바로 그이 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시 동안 도망가려 하셨던 것입니다.

두려운 잔입니다. 아버지의 진노의 잔입니다. 그 잔을 마실 때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얼굴을 돌리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죄라고 하는 거짓말, 욕, 여자 남자들 때문에 말입니다. 죄는 장난이 아닙니다. 여러분. 죄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여러분이 장난칠 어떠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 무게와 대가는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잔, 죄의 잔, 하나님의 심판의 잔, 두려운 하나님의 저주의 잔입니다.

잔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의 메시지가 있는 잔입니다.

은혜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오시기 전에 그것은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바뀔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엄청난 최종적인 선포로 정해진 것을 아셨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예언된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죄의 무게로 인하여 얼마나 두려운 잔인지를 아시고 거의 도망가려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최종적인 선포로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잔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버지의 최종 권위로 정해진 것이라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마셔야 한다는 잔과 메시아께서 받으신 잔이 정말 같은 잔일까요? 그 같은 잔을 교회가 마셔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엄청난 죄에서 교회를 건지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잔을 마시면 저 밑에 있는 지옥에까지 가셔야 함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 주님께서는 메시아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죽으셨는지에 대해 저에게 보여 주셨는데 얼마나 많이 수개월 동안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이 모든 일을 겪으셨는지 말입니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주님이 겪으시도록 허락하셨는지 말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메시아께서 겟세마네 동산을 선택하시고 거기서 발견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너무 상해서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거기서 발견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어 학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발견될 때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을 상상할 수 있지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그 사악하고 잔인한 사람이 그를 치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제 그를 잡아가고 같이 걸어갑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도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상상이 가시지요? 마음이 무너집니다. 메시아에게도 그 잔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셨지만 발견되기를 원하셨고 거기로 가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메시아를 찾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 지옥까지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입니다.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여러분은 구원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십니다.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땀이 핏방울같이 떨어졌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입니다. 예수님은 그 계획이 자기 자신이었던 것을 아셨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타락 전에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앞에 흠 없고 거룩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창세 전이 이미 인간들이 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후에 주님께서는 지구에 기초를 세우셨습니다. 이미 창세 전에 다 아셨습니다. 심지어 창세 전에 모든 것을 다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떨으셨고 평강의 왕께서 처음으로 걱정이 되셨고 식은땀을 흘리셨습니다. 엄청난 학대를 두려워하셨던 것입니다. 군중 앞에 옷이 벗기고 수치를 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님께서는 보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십자가 처형,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입니다.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주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이렇게 하실 것을 아셨고 그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의 삶이 그 우주의, 세상 창조의 기초가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닥쳤을 때, 도망가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 잔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러셨을까요? 메시아가 마셔야 할 잔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러셨을까요? 그와 같은 잔을 교회가 마셔야 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17장 22~23절입니다. 그는 그가 바로 그 자신이심을 아셨습니다. 그 잔에 있는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으시기 전에 그 걸어가는 길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마 상상도 하기 싫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지구를 멸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2~23절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이해하십니까? 그는 이미 그 가실 길을 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입니다. 그가 바로 그 자신이심을 아셨습니다. 바꿀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잔에 있는 두려움 때문에 그날이 되었을 때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율법, 바로 성경입니다. 그는 이미 아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기록되었고 세워졌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아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2절입니다.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함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7~28절입니다.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아버지께 면해 달라고 하지 않으셨고 가능하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말씀은 절대로 바뀌지 않으며, 아버지에 의한 구원을 그가 깰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아버지, 이때를 면하려 하시려는지요? 아니지요. 저는 이때를 위해여 이때에 왔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께서는 그들이 와서 찾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찾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32~34절입니다.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슨 일이 있어날지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으셨습니다.

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이미 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은혜의 조건을 아셨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선포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아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바뀔 수 없습니다. 창조될 때부터 이미 아셨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1절입니다.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메시아께서는 이 잔을 받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그 잔의 중대성과 무게 때문에 그 잔을 받기를 두려워하셨던 것입니다. 교회의 낙태, 목사들이 죄를 조성하고, 목사들이 여자들을 유혹하고 자기 차에 태우고, 항상 돈, 돈, 돈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이런 크리스천들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신 원래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거룩함으로 인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교회에서 발가벗고 있습니다. 남편과 부인을 찾고 이성 친구들을 구합니다. 누가 더 많은 여자들을 만나는지 경쟁을 하고 돈 자랑을 합니다. 구원의 대가입니다. 그것이 현대주의로 바뀌었습니다. 구원이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3절입니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잔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명하시는 교회가 마셔야 하는 잔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산에서의 그 잔과는 다른 잔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아버지의 진노의 잔을 마셨을 때 어떤 인간도 그것을 마실 수 없는 잔입니다. 그래서 교회에게 잔을 주셨습니다.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입니다. 교회가 마셔야 하는 잔입니다. 우리가 마셔야 하는 잔입니다. 우리가 이 잔을 마시더라도 우리는 절대로 해골의 곳인 골고다 근처에 있는 예루살렘 여자에 의해 준비된 다른 잔을 마심으로 크리스천으로써 간음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12절입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입니다. 메시아께서 만 받을 수 있는 잔입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는 잔입니다. 교회는 받을 수 없는 잔입니다. 여러분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스스로가 구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마시라는 잔은 어린 양 그리스도의 죽음을 깨닫고, 믿는 자의 삶에서 그것이 구체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늘 주님께서 죽으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잔 역시 외롭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아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 수준에서의 고통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14절입니다. 메시아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수준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누가 그것을 취할 수 있을까요? 메시아만 취할 수 있는 잔입니다.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메시아가 오실 때 말입니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너 또한 진정으로 내 잔을 마실 것이라고 교회에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작은 고통이 여기에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가 이 잔을 받음으로써 말입니다. 육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십자가에 가지고 가신 그 잔을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세상에 의해 거절당하며 고난을 받을 것이다. 외로움을 겪으라. 세상이 어떻게 하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다른가 하면 여러분이 교회로써 여러분은 그 잔을 마시는 고통을 겪으려고 고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잔을 마시라고 교회에 제안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시면 하나님의 진노는 여러분에게 집중됩니다.

메시아께서 그 잔을 마시셨는데 아버지의 잔이었고 아버지로부터 격리되셨습니다. 완전히 다른 잔입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고통의 잔, 외로움의 잔은 모든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고,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상하게 보인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그 잔을 마시라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1.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 마셨을 때는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졌습니다. 은혜가 부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부어진 것이었습니다.

3. 여러분이 이 잔을 받으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든 거래처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습니다. 옷차림을 바꾸고 거듭났다고 한 이후 모든 거래처과 고객은 오지 않고 조롱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라는 부르심을 받을 때 그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부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이 잔을 받으셨을 때 그는 혼자이셨습니다. 혼자이셨습니다.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하늘은 닫혔고 그는 우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왜 하늘의 문을 닫으시고 오늘 저를 버리시나요?”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이 잔을 마시라고 하실 때는 시간이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비추십니다. 여러분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예수님께는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메시아로부터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는 마실 수 없다고 하십니까?

쉽고 더 가볍고 더 낫습니다. 더 나은 조건입니다.

– 교회가 받으라는 잔,

– 십자가의 잔, 쓴 잔,

– 외로움의 잔, 거절의 잔,

– 이 세상으로의 구별의 잔,

– 세상의 도덕적 부패로부터 구별되는 잔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 이 잔을 마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하지만 메시아는 혼자이셨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아의 처형을 보여 주셨을 때 성령이 그를 데리러 지옥에까지 내려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대적을 물리치실 줄 알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지옥에서 말입니다. 십자가에서의 많은 상황을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내려가시어 예수님만 번개처럼 데려가셨습니다. 엄청난 빛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만 데리러 내려가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을 주시고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동안 십자가의 구원의 잔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있는 가운데 말입니다. 잔을 마시면 영생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 오르셨고 우리는 주님의 권위 아래서 그냥 쉽게 우리의 육을 십자가를 매달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게 죄에 대해 매우 슬퍼하라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해 더 슬퍼하십시오. 영광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슬퍼하셨는지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개의 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육의 뜻인 본능과 성령의 뜻인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육의 뜻은 항상 고난을 싫어하지만, 어떤 종류의 고통이라도 싫어하지만, 죽기를 싫어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우리는 육에 대해서 고난과 슬픔과 사망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합니까?

세 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하지만 어머니는 두 명을 부탁하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입니다. “그래. 나의 잔을 마실지어다.”

디모데후서 2장 11~12절입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야고보는 살해 당해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1~2절입니다. 야고보는 그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야고보가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말입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야고보는 죽어야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을 맞아야 했습니다. 메시아께서는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에서 도망가려 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고 그는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입니다. 메시아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들은 축복입니다.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높여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죄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그 잔을 마셨습니다. 요한은 십자가 앞에 섰습니다. 섬으로 격리당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옆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은 잔을 교회에 주셨다고 하십니다. 모든 친구가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내 옷차림 때문에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훨씬 가볍습니다. 여러분. 훨씬 가볍습니다. 메시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고 고민하셨고 슬픔을 참으셨습니다. 고통, 슬픔 말입니다. 그는 행복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없고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땀이 피처럼 흘렀습니다.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평안이 없었고 왔다 갔다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주님의 평소의 모습이 아닌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오르실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다 이루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육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십시오. 못 박으십시오. 성령의 교회가 태어날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의해 버림받은 다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매일 고통을 견디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핍박입니다. 친구들이 떠나갑니다. 교회에게 주신 잔을 마시기를 바랍니다. 휠씬 가벼운 잔입니다. 그 잔에 참여하십시다. 내 잔을 마시고 나의 피로 침례를 받으십시오.

축복합니다. 주님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따라 하십시오.

전능하신 예수님,

오늘 회개합니다.

죄에서 떠나고 제 마음에서

전심으로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제 안에 거룩함을 세우시고

육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매일 십자가의 삶을 살고 영적인

교회가 나오게 하시옵소서.

주님과의 영생을 보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