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선포한 시므온 ( Simeon, The Beholder of Lord Jesus )

우리는 예수님, 하늘의 장자인 예수님에 대해 알아봅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입니다.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니라

주님께서는 이제 그가 오실 때 장자의 율법을 성취하도록 확실히 하십니다. 그는 진짜 장자가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의를 채우게 될지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갖지 못하는 진짜 장자가 됩니다. 그녀는 그녀의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첫아들로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같은 장 22~38절로 가 보겠습니다. 이것은 큰 영역으로 가는 것입니다.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따라 장자를 주님께 드리는 것을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이것은 오순절 이전입니다. 여러분은 인지했습니까? 오순절 이전입니다. 그런데 시므온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하늘의 장자의 오심에 대해서 지시를 했습니다. 메시아입니다.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절이 중요합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것은 매우 강력합니다. 우리는 이제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7절에 그녀는 첫아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7절에는 그녀는 성전에 들어가서 첫번째로 태어난, 즉 장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했습니다. 장자를 제사장이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이야기 전개의 연대기로 보면 가장 적게 알려진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강력한 사람입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의 의로움과 모든 명령을 잘 따르는 경건함 때문에 성령님이 그를 선택하여 그 위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오순절은 아직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오직 특별한 사람, 아니면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선택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특정한 목적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시므온을 볼 수 있는데 증인이 되는 목적으로 그에게 성령이 임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장자로 오시는 메시아를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그 다음을 보십시오. 시므온은 기다렸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성령은 그에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늘의 장자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 말입니다.

더 깊이 가기 전에, 시므온이 교회에 대해 설교한 복음에 대해 보기 전에, 시므온에 대해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시므온은 의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정당하고 바르다라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정치적 중심이고 예배에 있어서도 센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중요한 기관이며 장소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시므온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에는 그리스도가 없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세상이 상상이 됩니까? 악이 있고 악이 있고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도 없습니다. 완전한 어둠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어둠 안에, 그 사악함 안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의로움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넘버 1, JUST MAN 시므온은 정당하고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말은 그는 의로운 자였다 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바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켰습니다. 그는 흠이 없었습니다. 이런 점들로 여러분은 이제 정당하고 바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이라면 영어 사전에 의로움과 경건함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그 특징을 잘 세분화 하여 자세히 이해할 것입니다. 자, 이제 시므온의 자질에 대해 보았습니까? 그는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둠 안에서 말입니다.

넘버 2. DEVOUT MAN 독실함.시므온은 믿음이 깊은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주님 경외, 경건, 순종, 충실함,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입니다.

저는 시므온의 특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1. 그는 정당하고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2. 그는 독실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넘버 3. 성령이 그에 임하셨습니다.

이 시므온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의 성격 말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성령은 오순절 이전에 시므온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말은 주님은 그를 이용해서 오순절의 기초를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의 장자를 기다렸고 그가 바로 결국 오순절을 가져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잘 이해하시겠습니까? 오순절 이전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던 것은 오순절의 기초를 다지신 것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보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이 무엇을 가져왔습니까? 성령. 오순절입니다. 그렇지요? 기초입니다. 그를 이용해서 기초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시므온을 세우신 것은 사실 크리스찬의 구원의 성격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성격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 다음 포인트는 성령은 시므온처럼 특정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소수의 몇몇의 선택한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특정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하늘의 장자인 주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당시에 사람들 중에 성령이 임하시면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미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그리고 심지어 왕에게. 때때로 선지자에게 말씀하셨고 때때로 왕에게도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분명히 성령께 나아갔고 권능과 모든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자에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네,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 옷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임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메시아를 알아보고 열방에 메시아를 알리는 특별한 미션을 위해 성령이 시므온에게 임하셨던 것입니다.

사사기 3장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사무엘상 10장 6절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역대하 15장 1절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에스겔 11장 5절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사무엘상 16장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에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역대상 12장 18절입니다.

그 때에 성령이 삼십 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 이르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그들을 받아들여 군대 지휘관을 삼았더라

시므온은 성령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어느 기간동안 성전에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그 날을 위해 오랜 세월을 성전에서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우리는 성전에서 기다렸습니까? 알다시피 성전은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배를 기다렸습니까? 시므온은 메시아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간절히 말입니다. 현재의 교회에 메시아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넘버 4.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스라엘의 위로입니까? 메시아입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40장 1절을 보시면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위로하라고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입니다. 이것이 주 그리스도를 예언적으로 묘사한 구절입니다. 위로자. 이스라엘의 위로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다음 이사야 41장을 집에서 읽어 보십시오. 이것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인 상징과 설명입니다. 이 말은 시므온은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의 화해와 중재를 통해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평화를 가져오는 위로자. 그들은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받은 고통을 제거하고 구제할 구원자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시므온에 대해 몇 가지 더 알아 보겠습니다.

1. 시므온은 하나님을 대주재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다르게 불렀습니다. Sovereign Lord. 그 의미는 최고 권세를 가진 분, 온 세상의 법적 권한을 가지고 계신 유일한 분이란 뜻으로 시므온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시므온을 선택하셨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죠? 시므온은 하나님을 더 깊게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교회는 언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대주재의 하나님이라 불렀나요? 시므온은 그 분이 이 지구상 모든 피조물들의 법적 권세가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은 최종적인 권위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법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분은 대심판관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경외 받으심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대주재이시기 때문이 여러분이 좋아하건 말건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주재의 하나님이라 부른 것은 시므온은 ‘최고의 통치자이시다’ 라는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최고라는 말은 더 높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대법원에 가면 그들이 ‘이것이 법이다’ 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더 이상의 논쟁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동의하든 말든 그것이 판결이고 법입니다. 그것이 법의 입장입니다.

시므온은 여호와에 대한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현대 교회인 여러분보다 주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를 안아서 그를 축복한 자, 이 시므온은 누구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지도 여러분은 보았습니다.

Supreme ,최고란 말은 ‘머리에 왕관을 쓰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Sovereign Lord, Supreme Lord,대주재의 하나님이란 말은 머리에 왕관을 쓰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점이 지금 교회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에게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하나님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Supreme Lord, 국가원수라는 말입니다. 한 나라는, 국가원수에게는 어느 누구도 푸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알았던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 왕국에 대한 이해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론을 위한 테이블이 없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은 왜 하나님께서 시므온을 선택하셨는지 아실 겁니다. 그가 메시아를 축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Sovereign Lord, 대주재의 하나님은 군주이십니다. 여러분은 한 나라의 왕을 보면 그 왕은 투표를 통하지 않고 그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들은 왕위를 상속받을 권한으로 왕이 된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 깊은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군주제, 왕국에 관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궁극적인 권위자이시며, 모든 피조물, 인간에 대한 법적 권위와 법적 권리를 가지고 계심을 이해했습니다. 여러분이 시므온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 한다면 교회는 이것을 인증하게 해야 합니다.

2. 시므온은 주님을 보았을 때, 주 예수님을 주의 구원이라 불렀습니다.

누가복음 2장 29~31절입니다.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시므온은 메시아의 증인만큼이나 매우 강력한 사람입니다. 시므온이 예수님을 알아 보았을 때, 시므온은 오랫동안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 가서 확인하고 돌아오고 확인하고 돌아오고를 반복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성경에는 아주 분명히 잘 나와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에 힘 입어, 성전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7년간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 유대여자들에 관해 잠시 나누겠습니다. 하시딤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과 섞이지 않습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끈이 있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유대 여자들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단지 그들의 남편과 그들의 결혼식날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머리를 묶어서 모자로 머리를 가립니다. 어떤 사람은 가발을 써서 가리고는 모자를 쓰기도 합니다. 머리를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마치 순결이 깨진 것으로 여깁니다. 순결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왜 회당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을까요? 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왜 항상 모자를 써야 할까요? 왜냐하면 머리카락은 여자들의 여성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머리카락과 함께 여자가 있으면, 예배를 드리는 일부남자들은 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앉아서 성전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을 보셔도 됩니다. 성전의 디자인에는 성전 내부, 즉 성소가 있고 바깥마당이 있습니다. 이 바깥마당을 여자들을 위한 공간이라 불렀습니다. 또 이 같은 장소를 이방인을 위한 공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방인들도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히브리 남자들만 들어가 예배를 드릴수 있었고 여자들과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공간에 있어야 했습니다.

이 말에서 우리는 마리아 또한 여자들이 있어야 하는 바깥마당을 가로질러서 성소에 들어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왜냐하면 마리아는 절대적으로 법을 잘 준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시므온과 메시아의 만남은 사실 여자들이 머무는 바깥마당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기서 만날 수 있었을까요? 메카니즘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33절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요한이 말하기를 “그 꿈에서 그를 본 것을 제외하고는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 지금 이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꿈에서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에 꿈에서 저에게 자세히 다 보여 주십니다. 요한이 말하기를 “꿈에서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러 들어올 때 성령이 내려와 한 사람에게 머무는 것을 본 것을 제외하고는 나도 그를 알지 못했다. 성령이 내려와 머무는 그가 바로 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분을 증명하는 방법을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기다려왔습니다. 누가 와서 여러분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 여러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이런 상태의 교회로는 안되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와서 우리를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케냐를 비록해 많은 나라의 여자들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세상은 기다려 왔습니다. 성경에는 나옵니다. 오셔서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분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의 성격과 특징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오면 그는 천국의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 명하여 천국의 문을 열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논쟁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틀림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있을 것이지만, 저에게 3번이 있었습니다. 꿈에서 보았습니다. 처음 나누는 것입니다. 저는 제단 미팅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곧은 구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저를 감싸었습니다. 곧은 구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여러분은 저와 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곧은 구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저를 감싸고는 저를 천국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을 저는 본 것입니다.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신분을 식별하시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열방에 “보라, 이것 이것 이것 이자들이 나의 사람이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고 토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그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도 믿기 어려울까봐 그런 환상을 3번이나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세번 이상으로 보았습니다.

시므온은 기다렸습니다. “아기가 어디있을까? 그는 올 거야.” 기다렸습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했는지 보십시오.

누가복음 2장 32절입니다.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시므온은 아기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한다면, 그것은 성령에 의해서 입니다.

시므온은 순수한 예배자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때가 되었으니 메시아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에게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는 달려 나갔습니다. 그는 성소에서부터 바깥마당까지 달려 나갔습니다.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헤이, 오신다고 하신 메시아가 저기 있어” 라고 알리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제사를 드리러 오는데도 그는 바깥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안았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열방에 알렸습니다.

이제 바깥마당이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셨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던 곳입니다.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의 백성들에게 임하던 곳입니다. 그래서 3가지, 성전은 방문하셨던 곳, 구름과 함께 거하던 곳, 하나님의 계시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메시아가 열방에 나타날 때가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행복하게 계시되었음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 다른 장소가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여기에 엄청난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항상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돌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또 다른 포인트는 메시아가 열방에 나타날 때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 중에 성전의 바깥마당에서 드러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 성소는 나를 거절했어” 라고 말할 수 있겠요?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성소,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이 성소는 나를 거절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기능의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시므온은 제사장이었습니다. 메시아가 그에게 왔고 그를 축복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거기에는 기능을 못하는 곳이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나는 이방인에게 드러내겠다.” 내 백성은 나를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시므온이 메시아를 여기서 드러내고 있지만 그들은 안에서 그들의 예배를 드리고 있고 메시아를 그 안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선은 성소의 입구에서 나와 바깥마당으로 가서 아예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그들은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주십시오. 메시아를 보내 주십시오.” 하지만 메시아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메시아를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방인은 그를 영접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남자들보다 훨씬 많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조심하십시오. 여러분, 너무나 아름다운 포인트가 여기 있습니다.

시므온은 주님을 보았을 때, 주 예수님을 주의 구원자로 불렀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를 보았을 때 메시아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고 이방을 비추는 빛이고 그 빛이 내려와 이스라엘 성전을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광이다 “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의 구원을 두 개 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장자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분과 미션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출애굽기 19장 3~10절에 나오는 것차럼 잘 구별되어서 예배를 드렸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오시어 그 빛이 이방엔에게 비추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장자의 나라로서 하나님을 잘 섬기어 열방에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신실하게 잘 섬기면 영광이 오시어 빛의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방인은 메시아의 계시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방법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성취하지 못한 임무가 이방인에게 계시가 되어 이방인에게 메시아가 소개되고 이제 메시아가 오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던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 성취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미션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영광이 내려 오시고 계시를 주셨던 이스라엘은 그래서 장자의 나라였고 그들이 다른 나라에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둠에 있는 이방인에게 빛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항상 깨뜨렸기 때문에 그 미션을 성취하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성취하지 못함으로 인해 메시아가 미션을 수행하러 오시는 것을 시므온이 보고 “이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 이름 예수 즉 예슈아의 의미는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시므온이 말하길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안았을 때 그는 교회의 구원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본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백성들의 구원입니다. 그 외는 없습니다. 시므온은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았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입니다. 천사가 주었던 메시지를 시므온이 본 것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몇몇의 사람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입니다. 그럼 이제 시므온이 무엇을 보았는지 아시겠죠. 시므온은 천사가 말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천사가 준 메시지와 같은 메시지를 시므온도 주었습니다.

시므온은 이사야가 본 빛과 같은 이방의 빛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9장 2절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빛은하나님께서 아직 드러내지 않았던 어둠에 있던 이방인에게 비추었습니다. 시므온은 이사야가 본 바로 그 빛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다음을 보았습니다. “메시아는 많은 사람을 패하고 흥하게 할 운명이다.” 그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의 메세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말한 것은 이 아기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패하고 흥하게 할 운명이다. 그 말은 1. 그가 예수님이라는 것이고, 2. 그의 메세지가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보자마자 달려 나가 그를 안고서 하는 말이,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보십시오. 시므온은 지금 교회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기서 말씀하신 대로, 약속하신 대로 라는 말은 성령이 말씀하실 때마다 언제나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왜 성령이 거짓말쟁이 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현대의 교회들은 성령님은 거짓말장이 인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성령은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아는 다시 돌아오신다고 말입니다. 다시 돌아오신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슬프게 살고 있습니까? 시므온은 우리에게 “같은 성령을 찾고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시므온이 말하는 성령께서는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아기예수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는 이제 갈 수 있다.” 그 말은 누구든지 메시아를 안은 자는, 누구인지 압니다. 교회입니다. 누구든지 메시아를 안은 자는 주의 구원을 본다는 것입니다. 주의 구원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그들 주위의 세상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쓸모 없습니까? 얼마나 부패하였습니까?

시므온은 “나는 이제 약속을 보았으니 작별인사를 하러 내 가족들에게 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이제 갈 수 있다. 나는 이제 죽을 수 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이것보다 더 큰 보물은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이 메시아의 구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하늘과 땅에서 메시아보다 더 큰 보물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지구 파괴, 종말에 관한 것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안고 그의 팔에 주님의 구원이 있음을 보고는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 죽을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는 평안히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의미는 여러분, 의로운 자들의 죽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겠습니까?

메세지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말은 시므온은 현재 교회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웁니까? 죽음을 보면 그들은 왜 그렇게 웁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겠죠? 그는 이제 구원을 보았기 때문에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의 죽음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말은 누구든지 메시아에게 온 자들은 죽음도 받아 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인 여러분은 왜 그렇게 많이 웁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심합니다. 여러분들은 너무 많이 웁니다. 이웃들도 여러분이 아픈 것을 압니다. 교회들이여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그렇다면 이 교회들은 의로운 교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의롭고 거룩하게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좋다고 여러해 동안 말씀드렸습니다.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만약 죽는다면 그것은 아직 괜찮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죽기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면 그것도 여전히 괜찮습니다.

메시아의 구원을 손에 받았다면, 이 목적을 위해 성령 또한 받았다면, 거기에는 더 이상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므온은 이 메시아께서 사망을 무너뜨렸다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므온처럼 손에 구원을 받았는데 어떻게 아직도 세상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 메시아의 구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세상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세상은 쓰레기와 같습니다.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지금의 교회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아직도 세상의 가치와 메시아의 구원을 동시에 붙잡을 수 있느냐? 라고 말입니다.

이 아기 예수, 메시아가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이 시므온은 예레미아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아 8장 4~12절입니다.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므온은 메시아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본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말하는, 안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는 이미 바깥에 와 계십니다.

로마서 9장 33절입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이 산 돌에 관한 복음입니다. 이 돌에 다른 쪽 사람들은 걸려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이 메시아가 싸인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불리한 싸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이 발표되고 그 예언의 성취되는 것은 항상 징조와 신호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메시아의 오심은 성경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시므온은 이 메시아가 반드시 와야 함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안았습니다. 그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싸인인 것이었습니다. 징조, 신호입니다.

그래서 이제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면 부정적 감각이 먼저 드러납니다. 부정적 면이란 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시므온이 본 것입니다. 이사야를 기억하십시오.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부정적인 사인입니다. 드러난다는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의 논리의 실체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인간의 생각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그 앉아있는 사람들의 옷 색깔과 위치 등을 보여 주시며 어떤 부분을 설교할 때는 그들의 하고 있는 생각도 보여주십니다. 주로 나쁜 생각을 품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의 생각과 의견이 드러납니다. 결론은 인간의 추론에 도달하고, 그들의 생각이 드러날 것이고, 그들의 의견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께 일어났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의 의견이 다 드러났습니다. 그리스어로 ‘드러나다’ 의 의미는 종말, 계시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께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실 때 너희들이 생각한 모든 것, 너희들을 스쳐 지나쳤던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6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리스어에서 말하는 드러나다의 깊은 의미를 보면 감추어진 것들이 빛에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빛에 말입니다. 그 날에는 숨겨져 있거나 감추어져 있는 것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메시아께서 백보좌 심판대에 앉으십니다.

로마서 2장 16절입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시므온이 말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감추어진 생각이 드러나리라. 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 30~31절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시므온이 무엇을 보았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시므온은 진짜 끝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갈 수 있다. 나는 죽을 수 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실 것을 본 것입니다. 그는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평안히 갈 수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심판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품은 생각에 대한 심판을 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 포함입니다.

여기에 선지자 안나가 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축복할 때 여자가 나타납니다. 84세입니다. 매우 늙었습니다. 이 여자는 밤낮으로 성전에 있었습니다. 여자는 결혼했습니다. 그 당시는 보통 18세가 되면 결혼을 했습니다. 7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그 이후로는 평생동안 과부가 되어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상상 할 수 있겠지요? 그녀도 메시아를 보았을 때 나아왔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여자도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메시아에 대해 말을 했다고 나옵니다. 그 말은 여자는 성전 안, 성소에 있는 사람들을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축복하며 이방인의 구원이 올 것을 말할 때, 안나 선지자는 성전 안에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뭐를 하고 있느냐”

기억하십시오. 이 안나 선지자는 84세로 성소의 바깥마당에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 안에 과부가 있습니까? 오늘날의 안나가 있습니까? 궁금합니다. 성경에는 말하기를 이 과부 안나 선지자는 여러 해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리더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리더들, 명예의 과부들, 마음이 완악한 자들에게 메시아를 드러내는 과부들, 성전의 안쪽에 돌을 던집니다.

그런데 현대의 과부들을 보면 그들의 남편이 죽으면 대부분의 과부들이 그 죽은 시체를 가져다가 일주일 동안 슬퍼하다가 그 다음은 짧은 옷을 사고 다리에 바세린을 바르고 슬리퍼를 신고 바깥에 돌아다닙니다. 일주일 후 말입니다. 오늘날의 안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안나는 성소 안도 아닌 바깥마당에서 오랫동안 밤낮으로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셨을 때 주님은 그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메시아를 보여주실 여자들이 어디에 있나요? 안나는 가서 마음이 완악한 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성전은 예배의 중심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백성을 만나셨고 백성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성전은

1. 항상 그의 백성을 만나시는 곳이었고

2. 영광이 내려오시어 백성중에 거하셨던 곳이었으며

3. 영광의 구름이 내려 올 때는 백성에게 주어지는 계시가 있었습니다.

3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의 아들 예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드러나실 때에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방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실 때도 역시 성전입니다. 성전이 바로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시는 곳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바깥마당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올 때 그것은 이방인의 교회인 키수무였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여기 머물라, 여기 머물라.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대도 엘리사는 “아닙니다.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강을 건너 이스라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밖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민을 온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와서 갈릴리 주변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민을 온 공동체였습니다. 그가 갈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강을 건너 이스라엘 바깥입니다. 거기서 데려감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로 인해 그들을 구해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던진 옷, 그것으로 이스라엘은 오늘까지 지탱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 그 옷을 천국에서부터 저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환상에서 그것은 천장을 통과해서 왔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는 그의 백성과 거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어 바깥마당에서 드러내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계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주님은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의 백성들을 방문하셨던 곳입니다. 그의 백성들과 거하셨고 그 백성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께서 오신 그 날 이후로 그의 성전인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할렐루야~~ 교회가 데려감을 당할 때 성령도 함께 가십니다.

여자로서 마리아는 여자들의 장소인 바깥마당을 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와 시므온의 만남은 여자들의 장소인 바깥마당에서 이루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방인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성소의 바깥입니다. 바깥마당에서 드러내신 것은 메시아께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열방의 구원자이심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래서 바깥마당에서 소개하신 것은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가져올 계획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보았고 이제는 평안히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그의 팔에 메시아를 안고 그의 구원을 본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지워진다는 말입니다. 그의 팔에 메시아를 안고 그의 구원을 가진 특권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보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지워집니다.

메시아를 안은 시므온은, 사실 거듭난 자는 이렇게 보일거라는 하나님의 예표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지금의 그리스도의 교회. 오늘날의 시므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 이르기를, 시므온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어둠의 시대에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사람이었고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 구원의 예표라면 지금의 교회는 어디 있습니까?

이제부터는 시므온이 전한 복음에 대해 계속해서 33절부터 볼 것입니다. 시므온이 현재의 교회에 전하는 복음, 메세지를 알아 보기 전에 요약을 해 보면,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가 메시아의 오심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장자 말입니다. 이 부분이 이 메세지의 가장 핵심 요소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말은 그에게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라. 그러니 너는 죽지 않을 것이라” 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방문이 하나님의 계시가 될 것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포인트는 시므온은 예수님이 데려온 제사장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마리아가 그의 장자를 이제사장, 시므온에게 데려왔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성경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침묵이었습니다.

시므온에 대해 또 다른 것은 시므온은 은 다섯 조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지불한 것은 비둘기입니다. 왜일까요? 이 제사장에게 마리아가 예수님, 메시아를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그들이 메시아를 시므온에게 데리고 왔을 때 27절 이하에서 읽었듯이 시므온이 뛰어 나가 그의 팔에 아기를 안고 그는 메시아의 삶을 축복했음에 틀림없습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이 사람 시므온이 메시아의 삶과 그의 사역을 축복했습니다. 와우~~

성경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입니까? 메시아의 삶을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을 우리는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거의 천국에 갈 뻔 했습니다. 교회에 중요한 메세지를 주는 이 사람에게 얼마나 무례한 일입니까? 심각한 메시지입니다.

시므온은 메시아를 열방에 소개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앉아서 성전 전체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본것은

1. 히브리 여자들은 모자를 쓴다는 것입니다. 하시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통파 유대교 말입니다. 모자를 쓴 부인들은 자기 남편 외에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두번 째로 제가 알아낸 것은 주님의 성전의 설계를 보면 지성소라 불리는 주요한 성소가 있었습니다. 주된 제사가 드려지는 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이며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가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은 여자의 여성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가끔 그들의 머리에 많은 투자를 하지요? 지금 여자들의 머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들이 하는 유일하게 나쁜 점은 인도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들의 신에게 희생제물로 드리고 나서 그것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데 그 점이 저를 너무 마음 아프게 합니다. 그들 신에게 제물로 바쳤던 것을 여러분은 여러분의 머리에 그것을 뒤집어 쓰고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가채를 먼저 없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봅니다. 이것이 여러분입니다. 여기서는 그러지 마십시오. 우리 사역회는 그러지 마십시오. 그래서 머리카락은 여자들의 여성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는 가렸습니다.

3. 그리고 다른 포인트는 여자들은 주요 성전인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설계를 보시면 주요 성소가 있고 바깥마당이 있었습니다. 그 바깥마당이 여자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성소에 들어가면 남자들을 파괴시키고 남자들이 넘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맞습니다. 거기서 부터 교회가 타락한 것입니다. 음란죄가 교회에 들어오기까지 타락한 것입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예배를 파괴시킬 것입니다. 갑자기 여자들이 이렇게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찬양을 할 때 머리카락을 흔들어 대고 머리카락 일부를 눈 사이에 내려오게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게 하는 것은 악입니다. 마귀가 그들에게 기어 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 보십시오. 남자들은 지성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여자들은 여자들의 장소인 바깥마당에 있습니다. 그 장소는 역시 또한 이방인의 장소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절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여자들은 절대로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도 절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르기를, 성령의 감동으로 시므온은 오랜 세월동안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곧 그의 나이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 틀림 없습니다. 우리는 시므온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항상 어떤 아기일까 체크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장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죠? 어떤 엄마가 그들의 첫 아들을 데리고 올까 확인을 한 것이었습니다. 장자가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시므온은 오랜 세월동안 기다리며 지켜보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은 성령이 그를 강요하신 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시므온은 마리아가 그의 장자, 하늘의 장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았을 때 시므온이 한 일은 뛰어 나간 일이었습니다. 달려 나갔습니다. 그 말은 시므온은 보고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메시아, 하늘의 장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보고 달려 나갔습니다. 여자들이 있는 마당으로 달려 나가야 했습니다. 이방인의 바깥마당입니다. 그곳이 시므온과 메시아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 가는 길에 많은 복음이 있습니다. 많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왜 성전의 바깥마당이었을까요? 세례요한을 기억하시죠?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와있었습니다.

저는 무도니 목사님과 함께 저녁 식사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종이를 달라고 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에 관한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앉아서 성경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소설책이 아닙니다. 이야기 책이 아니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성전의 디자인을 생각하면서 들어 보십시오. 시므온은 그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보고 싶어했던 장자라는 것을 인식하고는 그는 달려 나갔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여자들의 구역이며 이방인들의 구역인 바깥마당에서 만나야 했습니다.

저는 밖에서 온 다른 사람을 압니다. 그렇죠? 밖에서 왔습니다. 실제로 그가 살고 있었을 때 그 역시 강을 건너 밖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밖에 떨어 뜨리지만 주님께 감사하게도 어떤 이가 그것을 주워 오늘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까지 이스라엘로 다시 가져갔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이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시간은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이제는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며 주님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건너는 자들은 밖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냥 여기에 앉으세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아니요. 내가 올테니 여기 앉아요.” 그는 그를 잡아 당겼습니다. 그는 머물기를 거절하고 그와 함께 건넜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옷을 던졌습니다. 그 옷이 오늘날 여러분에게 말을 하고 있는 저에게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붕의 벽을 통해 이렇게 않아 계시는 저에게 내려왔습니다.

여러분은 저번 주에 어떤 이스라엘 유대교 랍비들과의 이메일을 통한 싸움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요즘 생방송으로 메시지를 전하면 이스라엘의 많은 도시에서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그들은 “아니야.” 그들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토라를 인용해서 말합니다. “ 토라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라며 그들은 확인을 했습니다. 그들은 “와우. 채찍 상처는 옳았고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왜 밖에서 오는가? 그들이 우리를 넘은 것을 믿어.” 맞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질투하게 시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때는 메시아가 이 땅에 아직 오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세상이 어두웠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던 때입니다. 저는 시므온이 얼마나 의롭고 경건했는지 그 상황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성령이 그를 선택하는 상황, 메시아가 아직 세상에 오시지 않았던 때. 메시아가 안 계시는 지구, 상상이 됩니까?

저는 휴거 후 메시아가 계시지 않는 지구를 이미 보았습니다. 사실 그 환상에서는 암흑이 와서 전 지구를 덮었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이렇게 어둡습니까?” 교회는 메시아와 간 후였습니다. 주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나중에 알려 주셨는데 교회가 바로 빛이였던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는 그 빛에 기름을 부어주는 성령으로 빛을 비추었습니다. 타는 빛입니다. 그 다음 어둠입니다. 할렐루야!!

들어보십시오. 시므온,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 어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이미 보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회인 우리가 시므온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렇 수 있을까요? 시므온이 있었던 곳 말입니다. 다르지 않고 많이 비슷합니다. 무엇을 보냐고 물어보면 저는 아침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지금은 어둠이라는 말입니다.

자, 마무리를 하면, 시므온에 전한 메세지는

1.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말은 여러분은 어떻냐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2. 시므온은 메시아의 오심을 볼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3. 그 약속은 성령의 계시로 온 것이었습니다.

4. 시므온은 실제로 정말 오랜시간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음에 틀림 없었습니다.

5. 시므온은 아기 예수을 축복할 제사장이었습니다.

6. 시므온은 메시아를 열방에 소개할 팁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깥마당에 달려나가 메시아를 선포하였습니다. “대주재여. 내 눈이 이제 그의 약속을 보았나이다. 이제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 메시아가 이 나라와 열방의 구원자임을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역할입니까? 이 메시아가 하실 엄청난 역할을 나타내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므온인가요?

교회에 휴거를 준비시키는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데이비드 오워 선지자님의 메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