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외침 시즌 2] 328. 이 땅의 삶은 짧으니 영생을 준비하십시오 1부_데이비드오워 선지자

1.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미션

주님께서 메시아 오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미션은 모든 사람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잘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목적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방은 영화로운 메시아 오심의 선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는 우리의 삶은 지나가는 것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나눕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환상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온 열방의 사람들이 목적지를 바꾸길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은 메시아 오심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3-14). 이는 매우 담대한 약속입니다. 계속해서 15-1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主)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자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5-16). 이는 충격적인 약속입니다. 다시 천국에서 오셔서 백성들을 데려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구부터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7-18절은 “그 후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7-18)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셔서 구름 위에서 만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오셔서 구름 위에서 만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지구를 떠나 위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주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딜 가시든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주님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영원히. 이것은 휴거의 중심 구절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지구의 삶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지구의 시간을 이용해서 영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디서 영생을 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을 보겠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이 세대에게 매우 중요한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니 여러분은 이 땅의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저는 메시아께서 오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단번에 드리시려고 단번에 바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7-28). 여기서도 이 땅에서의 삶은 짧다고 말씀하십니다.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구의 삶이 짧은 것처럼 그 시간을 이용해서 영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이용해서 여러분이 영생을 잘 준비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여러분의 영생을 준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절은 여러분이 무엇에 집중하고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합니다.

 

2. 영생을 준비하는 지혜

전도서 11장 3절입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나무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 11:3). 마귀가 인간에게 파괴를 던집니다. 영생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열방에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영화로운 메시아 오심을 준비케 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1장 3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나무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전 11:3). 이것은 매우 심각합니다. 성경에서 약속된 사자가 와서 가장 큰 권능으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면서 휴거가 일어나기 직전이라며 모든 사람들은 죽을 것이라고 외칩니다. 많은 치유를 일으키십니다. 지체 장애인들을 걷게 하시고 시각 장애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며 청각 장애인들의 귀를 여는 권능으로 왔습니다. 와서 이 세대 앞에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내립니다. 하나님의 구름은 고대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 생각해야 합니다. 영생이나 영벌 둘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이 지구에 살면서 영생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에서의 쾌락만을 위해서 살지만 그 끝은 비극입니다. 이것은 심각합니다. 이 지구에서 삶을 어떻게 사는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천국에서 온 사자의 음성을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가 종착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요한 기준입니다. 지체 장애인,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이 치유되고 있고 많은 권능이 베풀어졌습니다. 그들이 와서 이 땅의 삶은 매우 짧으며 메시아께서 오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4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삼하 14:14).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잃어버린 바 되지 않게 하십니다. 오늘 엄청난 꿈에서 주님께서 저를 다시 한 나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나라는 브라질입니다. 두 야의 선지자가 한 사람은 육의 몸을 가지고 대적인 표범 앞에 섰습니다. 다른 시간입니다. 보통 영화로운 몸을 가진 사자는 표범에 등 뒤에 서지만 그가 보지 못합니다. 오늘 다시 환상을 보았습니다. 강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 선지자에게 표범을 맞서게 하셨습니다. 육의 몸을 가진 선지자가 표범과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영의 몸을 가진 선지자는 표범의 뒤에 있었습니다. 표범은 알지 못합니다. 영화로운 몸을 가진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는데 그를 쳐서 둘로 쪼개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불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강하게 표범의 등을 쳤습니다. 그 환상에서 저는 표범을 쳤습니다. 주님께서 다가오는 어려운 시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구에 닥칠 환난입니다. 사무엘하 14장 14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삼하 14:14). 우리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삶은 지나가는 것이며 유한한 것입니다. 우리 땅에 쏟아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영생을 보낼지 숙고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디서 영생을 보낼지 계획을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자가 엄청난 권능으로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소식을 엄청난 권능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나라에서 영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3. 심판대 앞에서

고린도후서 5장 9-10절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9-10). 이것은 이 세대를 향한 강력한 조언입니다.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소식이 있는 지금, 여러분은 여기서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기쁘시게 하면 천국에서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거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룩하면 천국에서도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영생을 결정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8). 지구에 살면서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영생을 어디서 보낼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7절입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삶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7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 12:7). 영은 심판을 받기 위해 주님께 돌아갑니다. 창세기 3장 19절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곳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 이는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결과는 사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우리를 보내셔서 짧은 인생을 경고하시고 메시아께서 오시니 준비하라고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음성에 불순종한다면 그 결과는 불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오직 좋은 것으로만 우리에게 먹이려고 했습니다.

 

4. 영원한 소망을 가지는 삶

히브리서 10장 26-2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 10:26-27). 지금까지 읽은 구절은 인생의 짧음과 준비해야 할 사항에 대한 교훈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더 긴 삶 즉 영생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한 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준비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크리스천들은 교회 안에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번영복음과 돈 사랑이 시간을 이용해서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부도덕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이 땅에서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영생이 없는 것처럼 삽니다. 우리가 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들의 본양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천국의 본향을 준비해야 합니다. 의로움과 거룩한 교회로 영화로운 세마포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구절에서 주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찍 깨닫는 것이 영생을 준비하기 유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1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나그네와 순례자 같으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욕심들을 삼가라. 너희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한 행실을 가짐으로써 그들이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비방하는 일에서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1-12). 여러분의 영혼을 불에 던지려고 하는 죄성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지금 주님의 음성이 지구에 있습니다. 지구 전체에 메시아께서 오시며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하라는 음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정착하고 살려고 합니다. 마치 지구가 종착점처럼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삶은 비극이 될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전도서 11장 3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죽음은 모든 것에 끝이 아니며 그 이후에는 이 땅에서의 삶을 결산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 즉 휴거에 관한 구절과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 후에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요,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나사로의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분명한 말씀입니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며 그 이후에는 결산, 심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서 12장 2-3절입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 영존하는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들은 창공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단 12:2-3).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생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심판을 준비하는 기회를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본향,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 이후 심판이 있습니다. 결산이 다가옵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과 연결해 봅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4절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3-14). 휴거 전에 죽은 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회인 크리스천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는 것은 잠자는 것인데 그 후에 결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이생은 유한하며 결산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사는 것은 낭비되는 삶입니다. 이것을 크리스천들이 모르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결산 이후 영생이 이어집니다. 빛을 받아서 이생을 더 잘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크리스천들이 모른 채 삶을 낭비하다가 불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옳은 정보를 받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유한하다는 지식은 우리 크리스천들의 구원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근거입니다. 구원의 기둥입니다.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거룩함, 의로움, 순결, 이런 것들이 크리스천 구원의 기초입니다. 오늘 밤 읽은 구절들은 여러분의 구원의 근거가 되는 교리 즉 이 땅의 삶은 유한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 땅의 삶을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데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 부활, 메시아의 오심, 거룩함, 의로움에 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순결과 하나님의 빛을 비치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가 이생 이후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5. 죄를 이기는 보혈의 권능

죄를 씻는 보혈의 권능. 지금 교회에서 전해지는 정보는 사람들이 영생을 준비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빛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빛이심을 압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하여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도 알아야 합니다. 회개의 권능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치르신 죄에 대한 희생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면,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가 우리에게 알게 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영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빛을 받았다면 순종이 핵심입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에서 휴거 전에 죽은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삶의 유한성은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으며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혼과 함께 내려오실 때 그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르심, 죽음, 잠자는 것은 큰 소망입니다. 휴거 전에 죽더라도 주님께서 깨우시기 위해 오시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소망의 반대편에 끝에 있지만 거기서는 죽음과 소망을 한꺼번에 설명합니다. 주님의 구원은 강력합니다. 죽음과 소망이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거듭나지 않은 자들과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가 슬퍼하되 소망을 가지라고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죽으면 장례식은 그가 살았던 삶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거듭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장례식은 다릅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죽음에도 그토록 큰 소망이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신앙의 반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에 집중하며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절로 8절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먼저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느니라.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1-8). 예수님께서 주신 소망은 이생은 지나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무덤 너머에 소망을 줍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에 쏘는 것을 무력화하셨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 신앙의 견고한 반석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입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피로 우리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계 1:5). 이는 복된 소망입니다. 거듭난 순간에 우리에게 복된 소망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