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 엄청난 중요한 계시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이벤트에 관해서 나눌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거부, 버림받은 것과 관련 있습니다. 쓰라린 거부에 대해서 나눌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잘 결부시켜서 여러분이 이 지구상에서 걸을 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거울삼아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자 우리는 바리새인 들과 사두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도 예수님을 거부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가 떠날 때조차 이제는 죄에서 나오는 것을 매우 분명히 봅니다. 그것은 그가 통과했던 전쟁이었고 그 전쟁에서 이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을 이기었다 그 말은 그는 싸우셨고 결국 세상을 극복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겪은 그가 극복한 거부의 수준 거절의 수준 전쟁의 수준을 설명하는 것이고 세상을 즐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극복했다는 것은 저항, 고립을 의미하며 그것은 그가 부활 후 휴거 되기 전에 이 세상에 계실 때 겪은 모든 버림받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 오늘은 매우 중요한 것을 볼 것이며 관련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4장 1-21절입니다.

메시지의 제목은 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 다른 말로 하면 야곱의 우물의 교회입니다. 어떻게 그 교회가 야곱의 우물인지 그것은 현재 지금 우리가 있는 교회를 말하고 있으며 어떻게 휴거를 위한 준비와 연결되어 있는지 대체 무엇에 관해서 그리고 그 교회가 자신을 보고 복습하며 성령으로 회복될 수 있는 그런 교회인지 성령이 교회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 대화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하시다’입니다.

요한복음 4장 1절부터입니다.

1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자 영어로는 예수님이 더 이익이다 유리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세례요한이 죄 사함을 받고 죄 사함을 위한 회개를 전파하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푼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요한복음 4장 1절을 시작하면서도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 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바로 여기에 갈등의 근원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큰 관심거리였던 것입니다. 사실 실제로 침례를 베푼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고 제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말로 하면 주님께서 사역을 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주님의 사역을 발전에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은 제자 삼고 침례를 베푸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보다시피 제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권능으로 침례를 베풀어서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했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주 예수님을 믿게 되어 크리스천이 되어 믿는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이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 보다 많다고 말한 것입니다.

2절입니다.

2예수께서 침례의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절

3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주님께서는 거기에서 발생한 비판 저항 반대 때문에 갈릴리로 돌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메시지이며 이 메시지는 잠재적 갈등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님께서 제자들을 더 얻고 계심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요한 보다 더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풀었다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 과정에서 교회를 지금 어디로 데리고 가시고자 하는지 이미 여러분에게 힌트를 주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부흥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며 우리는 이미 부흥을 볼 수 있습니다. 부흥의 힌트를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께서 세례요한 보다 더 제자를 삼으시고 침례를 베푸신 것에 대해서 심기가 불편했는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자 그렇다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보겠습니다. 왜 그들이 바리새인들이 저항에 대해서 걱정하고 우려하는지 말입니다,

첫 번째 저항은 바리새인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신다는 것에 대한 저항 말입니다. 그 저항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바로 갈릴리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항상 비판적인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항상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고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가지 일과 다른 길을 말하는 사람들이었고 주님님께서 오셨을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주님께 걸림돌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리새인 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침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나타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침례가 믿는 자들을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특별히 침례에 더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로변화되는 과정에서 침례가 시간상 매우 중요한 순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치르고 있는 전쟁이 육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그것은 육보다 훨씬 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싸우고 있는 영이 육체적인 육으로 구체화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대적이고 마귀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그것이 교회에 주는 매우 큰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주님의 집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주님이 만난 첫 번째 저항은 주님의 집에서부터 왔습니다. 에스겔서 40장 41장 42장 43장 44장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심지어 마가복음에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셨을 때 그 첫 번째 저항은 주님의 집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 저항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집에서부터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교회라고 부르는 그곳에서부터 말입니다. 그것은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이제 여러분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다음 단계로 데려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또 그 당시 주님의 집이 주 예수님을 알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집 바깥에 있던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그들이 개종했고 그들이 침례를 받았고 복음에 반응했던 사람들이라고 그 사람들은 믿었지만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주님은 성전 주위를 둘러보셨고 그들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구절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기도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주세요. 사실 그들은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어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회복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적의 공격을 막으시고 많은 사상자들을 막으실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는 ‘메시아를 보내 주십시오 그리스도를 보내 주십시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오셔서 성전 바깥에 둘러 보고 계십니다. 성전 안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메시아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이미 여기에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침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보고 계시는 요한복음 4장에서의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 말입니다. 왜냐하면 침례를 영적인 의미에서 영적인 영역에서 사람이 믿는 자로 개종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심이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침례를 베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임할 큰 부흥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디를 향해 가는지 이해할 것이며 그리고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쓰라린 거부 속에서도 혹독하게 버려진 가운데서도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것에 대한 거울을 삼고 있는데 그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자격으로 우리가 그를 섬길 수 있도록 우리는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세례요한이 와서 침례를 베풀기 시작할 때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에게 저항했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침례에 대해서 매우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신 것이 요한 보다 많다고 걱정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영적인 전쟁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리새인들은 매우 위선적이고 주님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매우 관료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학에 대해서 많이 읽은 신학자였고 그들은 주님의 영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믿는 사람들이며 모세의 율법에 관해서 훨씬 더 깊이 광범위하게 많이 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았으며 결국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신 것에 그들이 즉시 저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사이 예수님을 떠나시게 했으며 그래서 이것이 제가 말씀드릴 여정이고 그들에게 저항을 불러오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정 중에 교회가 있는데 그것이 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그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금 기초를 세우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리리로 가셨는지 먼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 7절에서도 그들은 세례요한이 행하던 침례에 대해서 많이 염려했으며 그 결과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께 한 저항의 기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7절부터 9절입니다.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저항 선이 보이십니까? 예수님께서 만난 첫 번째 저항선 그것은 세례요한이 침례를 베풀 때부터 시작된 저항선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저항했습니다. 그 시점 이후로 그들은 그가 점점 더 많이 침례를 베푸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침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그들이 만나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것은 지금 확실히 분명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셨기 때문에 바리새인들로부터 만난 저항은 절대적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 저항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시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 여정의 기초입니다.

바리새인들 역시 보수적인 사람들이며 그들 스스로 구별된 사람들이라 믿었지만 그리고 그들은 또 전통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전통을 믿었지만 전통을 믿었다는 것은 우리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학 심지어 모세의 율법에도 그 전통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다른 공동체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더욱더 그들 스스로 더럽히고 그들과 그들과 혼인을 한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다른 공동체에 더러운 전통에 일부를 그들의 전통에 통합시켰고 그들은 그래서 모세의 율법만을 100% 지킨 것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만난 아말렉 족속이나 다른 족속들을 더러운 전통과 섞고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보다시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여전히 전통과 장로들을 존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은 개종하는 과정 즉 부흥의 시작의 과정에 있어서의 예수님께서 세우신 침례, 그것에 대한 다른 전통을 섞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저항은 사실 마귀로부터 왔다는 것을 바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로지 마귀만이 침례에 영적인 중요성과 그것의 깊이를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침례를 받을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정치적이며 신학적이며 부활을 부인했으며 비판적인 많은 것들로 인해서 주님과의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24절~에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 줍니다.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바리새인들이 주님에 대항하는 것 말입니다. 24절 이 대화에서 왜 중요할까요?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리스도의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침례를 베푸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며 침례를 받으므로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개종하고 나면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전통에 갇혀 있어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26절

26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렇게 한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너희 가운데 서있다고 말한 것은 너희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례요한에게 그가 그리스도인지 엘리야 선지자인지 묻는 말에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는 그 부분에 있어서 매우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싸움과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세례요한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왜 침례를 베푸느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그가 침례를 베푸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하길 “왜 그가 침례를 베풀고 있지? 그리스도만 오셔서 침례를 베풀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하실 일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저항이 바리새인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즉시 돌아갔을 때 여전한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4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1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유대를 떠나 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이 말은 이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에 사마리아를 절대적으로 통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리겠습니다.

5절입니다.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이것은 정말 커다란 사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성경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 엘로힘이 쓰신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가장 높은 지혜라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의 길과 우리의 길이 얼마나 다른지 그것은 천국과 지구의 거리만큼이나 다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이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주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의 깊이가 정말 깊이 박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그냥 소설처럼 읽으면 안 됩니다. 4절에서 6절에는 교회의 특징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모든 것은 주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6절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6시쯤 되었더라 이것을 번역을 하면 정오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님은 유대를 떠나야 했지만 유대인들이 다니는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사마리아에 수가라는 지나치도록 마음을 강요당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야곱의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야곱의 우물에 있는 집중할 교회입니다. 야곱에 우물에 있는 오늘날의 교회입니다.

7절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그는 사마리아를 통과했으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데 있어서 그 길을 통과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수가라는 작은 동네를 통과해야만 한다 통과해야만 하는 필요가 있다는 그 마음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야곱의 우물을 본 것입니다. 나중에 이해하시겠지만 그가 거기서 본 것은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야곱의 우물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말입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8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께서 유대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저항을 당하셔서 즉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행하셨습니다. 그 여정은 강요된 것이었고 유대에서 저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를 삼고 침례를 베푸시어 부흥이라는 것이 왔기 때문에 유대를 떠나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유대인이라도 사마리아인과 교류하는 것을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 수가라는 작은 마을에 이를 때 그는 야곱이 사서 그의 아들 요셉에게 준 작은 땅 그 정확한 지점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피곤하여 앉아계실 때 그는 교회를 만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여자는 거기에 나타났고 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 보십시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대접하도록 부탁합니다.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 그것은 깊은 예언이었습니다. 물 좀 주시오. 그녀는 “나는 이제 막 물을 기르러 왔는데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신분) 계급 순위를 본다면 사마리아 인은 유대인보다 낮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피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때도 사마리아 땅은 절대로 건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유대보다 낮게(낮은 신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라는 것은 그것보다 더 낮은 지위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유대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10절입니다.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는 이미 여기에 생수를 소개하십니다. 왜 생수에 대해서 소개하실까요? 성경에서 여러 번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산돌을 언급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베드로전서 2장 4절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것은 주님께서 산돌이라고 불리시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생수라고도 불리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보고 있으며 이 여자와 교제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참고 구절: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시라)

이 교회가 주님께서 바로 여기에서 마주친 교회입니다. 여기서 뭐를 하고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야곱의 우물에서 교회를 발견한 것입니다. 물을 달라고 했던 그를 알았더라면 그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여러분의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 조금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먼저

야곱의 우물 왜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었을까요?

창세기 33장 16-20절로 가보겠습니다.

16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그것이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이 장소를 그가 샀으며 땅을 파고 집을 지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볼 수 있다시피 그는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심지어 가축과 같이 말입니다.

창세기 49장

21납 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잘 들어 보십시오. 근본적으로 성령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야곱이 드디어 그 재산을 나누는 시간에 도달했을 때입니다. 그는 그것을 그의 열두 명의 아들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는 납달리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22절에 와서는 요셉의 몫에 해당하는 땅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이고 샘 곁에 무성한 가지이다. 자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우물입니다. 야곱의 우물, 그의 소중한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 있습니다. 그가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여러분 보이십니까?

그리고 이제 주 예수님께서는 이 우물에 오셔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하셨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보다시피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지나가셨습니다. 이 대화 중에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주님께서 요셉 소유의 땅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이 나타나서 지금 우물로 옵니다. 주님께서 피곤해서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즉시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 하고 그 여자는 “안됩니다, 당신은 유대인이므로 나에게 물을 달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즉시 그 여자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 여자는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타나 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하지만 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심지어 부탁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건 완전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인중에서 더 신분이 낮은 여자입니다.

저번 주에는 마태복음 3장 요한복음 1장 4장에서 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쓰라린 거부와 버림을 받아서 유대를 떠나셔서 갈릴리로 가시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여정 중에 사마리아 오셔서 어떻게 야곱의 우물을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창세기 33장과 49장을 통해서 왜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지에 대해서도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눈을 다음 단계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일어났던 그때를 매우 분명히 말합니다.

계속해서 요한복음 4장 6절입니다.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긷기 위해서 이때 보통 사람들은 여섯시 제6시에 우물에서 물을 길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이 한마디에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오에 물을 길으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정오에 우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주님과 대화를 할 때도 그 여자는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당신은 물 한잔 달라고 할 수 없고 저는 심지어 당신과 같이 서 있기도 앉기도 같이 대화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자 제6시에 우물로 온 여자에게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제6시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요? 그 여자는 제6시 여자입니다. 무엇이 일반적인가 하면, 무엇이 정상적인 일인가 하면,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물로 가서 그것이 아직 깨끗할 동안에 물을 긷는 것입니다.

아침에 깃는 물은 시원합니다. 밤 동안 기온이 낮아져서 아침에 물은 시원합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 지역에 대부분은 몹시 덥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져서 매우 춥습니다. 그래서 우물물이 밤사이에 시원해지고 물이 차가워지고 물이 깨끗하지 않더라도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 사마리아 지역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침에 우물에 가서 물을 긷는 것입니다. 아침에 우물로 오면 물이 멈추지도 않거 계속 나오면 아직까지 시원하고 우물의 물의 양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우물을 파게 되면 지하수 수면이 닿을 때까지 팝니다. 그 지하수면을 깨야 합니다. 그 지하수면은 단단한 부분입니다. 단단한 암석으로 되었고 그 밑을 덮고 있는데 그것은 지하수 대수층이라 부릅니다. 지하수 대수층 그래서 우물을 팔 때 지하수면 단단한 암석이 부딪힐 때까지 파고 그런 후에 그것을 깨뜨려서 지하 수 대수층에 닿을 때까지 파야 합니다. 지하수 대수층은 여기 지구 아래에 있는 매우 깨끗한 물을 포함하는 구역입니다. 그리고 그 지하수 물에는 암석이 있는데 그 암석은 탄소가 매우 풍부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주님께서 계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탄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지하수면을 치면 거기에 있던 물은 반은 우물 쪽으로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지하수가 누출됨에 따라 암석에 표면은 활성 산소로 덮이게 됩니다. 활성산소 그것들이 필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이 올라왔다가 우물 표면을 향해서 볼륨이 커짐에 따라 그것들이 물을 정화 시키는 것입니다. 탄소가 풍부한 암석에 존재하는 활성산소는 다음 세 가지를 걸러냅니다.

먼저 물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물질 즉, 박테리아를 꼼짝 못 하게 합니다. 물에 박테리아가 있으면 그 박테리아는 활성산소로 덮입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 암석은 생물학적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자란 사람들은 우물에서 길러온 물을 마시며 자랐어도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은 박테리아 막을 형성한 활성산소가 있는 탄소가 풍부한 암석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필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필터 역할을 한 것이죠 그다음 걸러낸 것은 화학물질입니다.

칼슘이 함유되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암석이 화학성분을 막아버립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걸러줍니다 탄소가 풍부한 암석은 우물을 향한 표면과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그 우물의 물이 채워지도록 지하수 대수층과 분리를 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6시 우물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우물을 만드는 과정을 잘 보셨을 겁니다. 이 지역에 여자들이 아침 일찍 우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이제 아셨을 겁니다. 왜 우선 깨끗하고 청결하고 시원한 문을 가족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물물의 대부분은 동물 가축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되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우물 속에 수위가 내려갑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우물이 쉬게 될 때 지하수 대수층에서 우물을 채우기 위해 물이 새어 나옵니다. 그래서 물을 긷는 데 있어서는 아침이 훨씬 편한 것입니다. 물은 더 깨끗하고 시원합니다. 다 그렇다며 이 여자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길래 주님이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이 여자를 여기서 찾고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자가 누구길래 주님께서 제6시에 만난 것일까요?

오늘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여자는 아마도 쓰라린 과정을 당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수가라고 불리는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에게 거부당한 사람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마을이 작으면 사람들이 이야하고 서로를 잘 압니다. 작은 마을에서는 서로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이 여자가 아침에 오지 못하고 한낮에 온다는 말은 이 여자는 아침에 온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여자들이 험담을 하면 말이 퍼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다른 여자들이 이 여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여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자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여자가 그 작은 마을 수가에서 이야깃거리에 대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자는 혼자 있을 때 우물에 가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여기서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4장 11절입니다.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자 여기서 흥미로운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여자가 아침에 올 수 없다면 이 여자가 우물에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6시 정오에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마리아 여자가 아침에 나타나지 못할 수도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에 대해서 뭔가 바르지 못한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여자를 험담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족이나 남편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여자는 이야기할 것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여자가 그 지역사화에서 거절당했다면 여자가 한일이 뭔가 잘못된 것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우물가에 거 이야깃거리 논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아침에 우물에 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야기할 만한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여자 또한 깨끗하고 맑고 시원한 물이 필요했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침에 와서 물을 길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이 메시지에서 저는 ‘제6시 여자’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말은 심지어 오늘로 왔어도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멀리 서서 보고 “우물가에 누가 있나 아무도 없지? 그럼 이제 우물로 가서 물을 긷자 그럼 아무도 나는 창피 주지 않을 거야” 제가 보기에 여자는 창피당하고 망신당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여자를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의도적으로 한낮에 여자를 만나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의 메시지가 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라는 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제목은 혹독한 거절 중에 주님 섬김입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가 가장 비참하게 가혹하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올 형편도 안 되는 것을 분명히 봅니다. 그 여자는 한낱 제6시에 와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만나셨을 때 여자가 이 시간 다시 말해 대부분의 물이 이미 길러진 이때에 우물이 깊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에 물을 길어오면 여자들이 물을 담을 가지고 오는 용기들을 봅니다. 그릇이 줄 세워져 보더라도 그 용기가 누구의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물을 길으러 갈 때 항상 같은 용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중동 국가에서 사람들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는 것처럼 그들도 해 뜨기 전에 더워지기 전에 다섯시쯤에 일어나서 밭에 나갑니다. 그래서 5시가 되면 그들은 이미 보리와 밀밭을 위해서 땅을 갈고 준비합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고 7시가 되면 여자들은 밭을 떠나고 집을 떠나 우물로 갑니다. 여기서 다른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보통 그룹으로 뭉쳐 다닙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은 그런 작은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걸어 다니고 같이 이야기합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나요? 남편이 아내를 쫓아냈데요. 부인을 바꿨데요 어젯밤에 그들이 싸웠데요 결혼을 그 집 딸이 집으로 돌아왔데요” 등등.. 중동지역 작은 마을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수많은 풍랑과 소문이 있고 특히 아침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물에 오면 여러 사람들의 그릇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오기 때문이죠. 그 그릇을 보면 주인이 누구인지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좀 기다려줘요 같이 가게 그릇을 가져올 테니 같이 가요~” 같이 다닙니다. 그것은 일종에 클럽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만나려고 했던 그 여자는 그 클럽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침에 클럽 즉 우물물이 아직 많을 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길으러 온 사람들의 아침 클럽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교회에 휴거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분과 같이 깊이 들어가겠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저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 하고 예수님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밤새 나왔던 물은 사람들이 이미 다 길러가고 남은 것은 깊은 우물과 지저분함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들의 소나 가족과 가축들을 위해서 이미 다 퍼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일부로 만나 시기로 한 이 여자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이고 굴욕을 당한 사람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시려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놀라운 것은 다시 8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 8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정을 시작하셨을 때에 이 여자를 만날 것을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난 후에 보통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누구를 만날지를 알았습니다. 주님의 종도 누구를 만날지를 아는데 주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는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그 여자에 대해서 얼마나 아셨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일부로 이 시간에 가셔서 이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아침에 있던 여자들이 아니라 여기 있는 이 거절당했던 입방아에 올랐던 여자 우물에 누가 있는지 멀리서 숨어서 보고 사람들이 없을 때 왔던 그 여자 말입니다. 그 여자는 거절을 받아들였고 누구 나에 의해서 고통당하는 것에 익숙한 여자였습니다. “물이 아무리 더러워도 아무도 없을 때 가겠어요 그냥 고통받을게요 그냥 더러운 물을 길을게요 우물이 깊어져서 물을 퍼기 힘들어도 그냥 고통받을 께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합니까?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일부로 만나기 위해 오신 그 여자가 여러분은 이제 보이냐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여자는 예수님과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난에 익숙하고 심하게 거절당했습니다. 버림받았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게 된 이유도 바리새인들에게서 당한 거절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시고 침례를 베푼다는 소리를 듣고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심한 전쟁이었으며 우리는 요한복음 1장 24절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세례요한 역시 침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는다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왔기에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3장 7절에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와서 침례를 받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매우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러니 여기 와서 회개하라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했습니다.

이 대화를 보시면 예수님 역시 침례를 베푸시고 제자를 삼으신다 하며 바리새인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갈리리를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여자를 만나셔야 했기 때문이죠 엄청난 거절과 버림받음으로 고통받고 있던 제6시 여자를 만나셔야 했던 것입니다. 아침에 시선하고 깨끗한 물을 길으러 온 남편과 아이들과 집안에 대해서 좋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이 클럽에 속한 여자들이 아니라 아무 이야깃거리가 없는 여자 말입니다. 굴욕적인 여자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와의 만남을 위해서 그 제자들을 자리를 비우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사러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만날 필요가 있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6시에 거기에 도착하셨고 만나기로 한 그 여자도 나타났습니다. 그 외에 여기서 보는 것은 이 여자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제6시에 물을 기르러 갔다는 것입니다. 매우 이상한 시간입니다.

아무도 그 시간에는 오지 않는 그런 시간입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다른 여자들은 아침에 물을 길어 옵니다. 물이 시원할 때 말입니다. 저는 지하수가 나는 과정에서 어떻게 화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박테리아가 걸러지고 아침에 물이 더 시원하고 깨끗하고 물의 양이 많아지는지를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비난을 받기 때문에 거부당하기 때문에 비참한 거절을 당하기 때문에 아침에 올 수 없었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익숙합니다.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만나셨고 그 과정에서 이 여자는 이 우물은 우리의 조상 야곱의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계속하면 요한복음 4장 11절입니다.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라고 했고 주님은 말씀하시길 10절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래서 그 여자는 말하기를 12절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본질적으로 그 여자는 그 여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야곱보다 클 수 있다고 눈치를 챈 것입니다. 이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큰 이름입니다. 여러분이 야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 지역 주변에서도 큰 이름 명성이 있는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야곱 자신이 마셨던 야곱의 우물에 물을 마신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조상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너무 거절당하고 굴욕적이고 내세울게 하나도 없는 여자 다른 말로 하면 고통받는 사람 슬픔에 있는 사람 고통에 익숙한 사람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예수님 자신을 보아도 막 거절을 당했고 그 삶 전체도 거절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거절당한 이 여자와 주님 자신 또한 거절당했다는 사실의 유사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왜 그가 이 교회를 만나려고 했는지 이 특정한 교회를 만나시려고 했는지 분명히 설명이 됩니다.

자 오늘 야곱의 우물 야곱의 우물에 있는 두 교회에 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첫 번째 교회는 여기에 있는 이 교회 고통에 익숙한 교회 철저하게 버림받은 가운데 주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죄에 빠졌고 생수가 많이 필요하고 회개가 많이 필요하고 구원이 많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모욕당했고 발버둥 치는 교회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을 아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편안하고 아침에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교회 좋은 조상을 가진 교회 “오~ 야곱은 우리의 아버지고 우리의 조상입니다. 우리는 야곱으로부터 매일 물을 마십니다”라고 하는 교회와 야곱의 우물에서 거절에 직면해 있는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만나신 교회 이렇게 두 가지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입니다. 이런 교회에 대해서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2절입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자 여기서 메시아가 어땠는지 보이십니까? 그리스도가 어땠는지 보입니까? 왜 그가 일부로 만나려고 했는지 알겠습니까? 성경에서 그가 사마리아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어야 했는지 여러분은 보입니까? 그래서 이 버림받은 사마리아 여자를 만난 것입니다. 제 육시 여자 말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제6시 교회가 버림받은 교회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 교회는 세상을 즐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달콤함을 즐기지 않습니다, 제6시 교회 말입니다. 그는 비참하게 버림받고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회개가 필요 없는 99명의 의로운 사람보다 회개가 필요하고 나의 보혈이 필요한 그가 낫다. 그래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거절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기에 두 개의 교회가 있는 것이 보이지요? 하나는 주님께서 만나신 교회 주님처럼 고통에 익숙한 교회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그래서 예수님께서 왜 이 여자를 만나려고 하시는지 보입니까?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메시아의 특징이며 요한복음 4장에서도 이 여자에게서도 이와 같은 특징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6시 교회입니다. 야곱의 우물…

요한복음 4장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니라

주님께서 이 여자에게 하신 정말 강력한 강력한 강력한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께서 야곱의 우물을 마시는 두 교회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바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중 한 교회는 아침에 마시는 교회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을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해 잘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시원한 물을 마시며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옵니다. 그들은 굴욕감도 없고 고립되어 있지 않고 그들은 그룹으로 다닙니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머리에 물을 길을 그릇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우물로 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여러분이 우물에 와서 우물물로 채워진 그릇들을 보면 자동적으로 누가 우물에 있는지 거의 바로 알 수 있다고.. 왜냐하면 그들의 그릇을 보고 그들의 신분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침에 와서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긷기 때문에 매우 편안합니다. 그들은 그룹으로 옵니다. 그 사회 클럽에 일원입니다. 그들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수가라는 동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보통 교회 세상에 의해서 인정된 우물에 오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세상에 좋은 것을 즐기며 편안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외로운 교회 제 육시 교회를 만나시려고 택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종으로서 이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가끔 거절을 당합니까? 여러분이 설교하고 있는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혼자 서있기도 합니까? 오직 여러분 가족만 교회에 있습니까? 모욕당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4장 13절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마르려니와 이 말은 항상 여기에 다시 온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물물이 가장 좋은 때 아침에 오는 사람들은 항상 빨리 다시 와서 물을 긷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처럼 외롭고 버림받고 모욕을 당한 사람들 심지어 친구와도 같이 오지 못하고 물이 가장 좋을 때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방문의 시간을 만나게 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미 그녀에게 생수를 소개한 것입니다. 사실 그 여자는 세상의 물 즉 야곱의 우물에서 나온 물에 대해서는 편안하고 익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여자에게 야곱의 우물에서 빠져나오면 생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4장 15절입니다.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왜 이 여자는 야곱의 우물에서 이 세상에 물을 긷기 위해 계속 여기 오지 않아도 되도록 주님께 생수를 달라고 했을까요? 왜냐면 많은 거부감에 시달렸고 굴욕감을 느꼈고 우물에 숨어서 오고 가는 것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가 더 진행되기 전에 주님의 궁극적인 부흥을 교회에 말씀하기 전에

성경에서 인용된 제6시의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가복음 5장 24절부터 34절까지입니다.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잘 들어 보십시오 귀하신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세상에서 편안한 교회라면, 세상의 좋은 것을 즐기는 교회라면 여러분이 주님의 방문의 시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휴거조차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님만이 주님의 방문의 시간에 오실 수 있으며 교회가 휴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하신 다른 것은 사마리아 여자처럼 철저하게 버림받고 창피를 당하고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제6시 교회 제6시 사람만이 하나님의 방문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실 때 주님께서 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가 제6시에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야곱의 우물에 갈 때 아침에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6시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야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6시에 우물에 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닥을 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가 바닥을 친 것을 압니다. 부끄러움을 당했고 굴욕을 당했으며 비웃음을 당했고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이제 말하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은 피에 문제가 있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제6시 사람 제6시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주님은 사마리아 여자에 대해서 그 제자들이 얼마나 비판적일지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마을에 음식을 사러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이 여자를 만나실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이 마가복음 5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자리를 비우게 하여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를 만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제자들은 대답하기를 거기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그리 물으십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무시하고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래서 그 일로 한 여자 오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길 딸아 너는 치유받았느니라 그리스어로 치유받았다는 말은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너는 너의 죄는 사해졌다고 아주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귀하신 여러분 피의 문제가 있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이 여자 또한 제6시 사람입니다.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이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로서 가장 굴욕적인 것은 출혈을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출혈을 할 때 심지어 모세 오경에도 분명히 언급되어있지만 어떤 사람이 출혈을 하면 그들은 추방당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심지어 12년 동안이나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당했고 나아지기는커녕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여자는 피를 많이 흘리기 때문에 힘이 없었고 남의 입방아에 많이 올랐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12년 동안이나 이렇게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는 심지어 박테리아 증식의 매개체가 되는데 이 여자가 얼마나 어려울지는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처럼 이 여자는 항상 혼자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그런 여자를 뭐라고 하는지 왜 여자는 굴욕감을 느꼈는지 무엇이 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제6시의 사람이라고 보는지 우리는 다른 수준으로 보겠습니다.

레위기 15장을 보면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혈루병을 앓는 여자는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자로서 매일 12년 동안 피를 흘립니다. 피를 흘리고 냄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거절과 거부를 당했는지 여러분은 상상이 갈 것입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이 여자에게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른 레벨로 가보겠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부터 35절입니다. 이것이 모세 율법인데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겠습니다.

25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성경에서는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모세의 율법에서 보는 이 여자에 대한 견해입니다.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12년 동안 부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시겠지요? 이 굴욕감 엄청났을 것입니다.

26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한 때의 부정과 같으니

2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이 말은 그 여자는 구별,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여자가 만진 것은 심지어 여러분이 만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여자가 앉은 의자를 여러분은 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심한 일입니까? 그것이 이 여자가 바닥을 친 것이며 제 6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여자를 거부 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제6시 교회를 만날 것을 일부로 의도하신 것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교회가 성령님의 방문을 보는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과 타협했고 세상에서 나오는 좋은 것들을 즐깁니다. 죄와도 타협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6시 교회는 바닥을 쳤습니다.

이것이 이 여자에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12년 동안 그 여자가 만진 것 아무도 만질 수 없고 그 여자가 많은 의자 아무도 앉을 수 없고 그 여자가 누운 침상 또한..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접촉한 어떤 것도 부정한 것으로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선언되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레위기 15장 27절입니다.

27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28 그의 유출이 그치면 이레를 센 후에야 정하리니

29 그는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자기를 위하여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30제사장은 그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 유출로 부정한 여인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31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

32가 규례는 유출병이 있는 자와 설정함으로 부정하게 된 자와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가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을 여러분은 이제 분명히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에는 여인의 피에 유출이 있으면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하게 여긴다고 분명히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맥락에서 여러분은 12년 동안에 거절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것이 쓰라린 거절을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만나시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또 다른 여자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거절당한 사람에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절에서 11절입니다.

1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자 음행중에 잡혀온 여자입니다. 바닥을 친 또 다른 여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잡혀끌려와서 예수님 앞에 놓고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 하시자 그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예수님께서 그 죄를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음행 죄 말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로 가득한 삶을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제6시 여자였고 거절당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자 또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12년간 고통받았고 12년 동안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여자가 만진 그 어떤 것도 거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고 부정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으로 잡혀온 여자도 사실 더러운 것을 봅니다. 음행으로 잡혀 왔습니다. 성적인 죄 말입니다. 이런 여자들이 바닥을 친 여자들입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죄 많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교회를 나타내지만 바닥을 친 교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오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의 힘뿐입니다. 제6시 교회의 또 다른 케이스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이 고립되고 거부당하고 모욕적이었음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만날 목적을 두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혈루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항상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고 그 여자는 12년 동안 피를 흘렸고 모세의 법에 따라 그렇게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 여자가 만진 것은 아무도 만지지 않았고 심지어 그 여자 앉은 의자 또한 아무도 앉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케이스 우리가 본 것은 음행죄를 저지른 여자입니다. 여자는 많은 거부감으로 고통을 받았고 여자는 죄가 있었기 때문에 돌로 쳐졌습니다.

이 모든 경우들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교회이며 죄를 지은 교회입니다. 자 지금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 또 다른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님께서 만나시려는 교회이기 때문에 구속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입니다.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제자 삼고 침례를 베푼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매우 베타적이었습니다.

44절로 건너띄겠습니다.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잘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향유 담은 혹함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부은 이 여자는 죄를 지은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치유가 일어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서 와 같은 똑같은 일입니다.

그렇다며 지금 잃어버린 아들은 어떻겠습니까? 누가복음에(탕자) 나오는 잃어버린 아들은 밖으로 나갔습니다. 완전히 바닥을 칠 때까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조롱당했고 고립되었고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다 방탕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가 돌아왔을 때 형은 그와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구속을 위해서 예수님의 보혈을 필요로 하는 교회의 경우인 것입니다. 오직 이런 유형의 심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오직 이런 유의 교회만이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야곱의 우물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야곱의 우물에 있는 교회 고립되어있는 교회는 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그 교회는 그들의 죄를 인식하는 그런 교회가 주님에 의해서 인도되는 그런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교회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 여자와 말씀을 나누십니다. 요한복음 4장 16절입니다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는 이 분이 영원한 물 생수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여자는 물을 마셔야 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을 깨달았을 때 여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제6시에 우물에 오기 위해서 몰래 숨어서 오고 모욕을 당하는 것에 지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죄를 자복하도록 그 장면을 열어주셔서 여자가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보십시오 17절입니다.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 여자는 무서울 정도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지금 매우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지금 아침 교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려는 교회 의로운 교회 그리고 좋은 혈통으로서의 그 교회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주님 또한 그런 교회를 만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세상에서 보는 교회 제일 편안한 교회는 세상이 편하고 잘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세상의 방식과 스타일에 따라 세상과 같이 옷을 입고 세상에 맞는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은 매우 편합니다. 그것이 시원한 물을 가지러 오는 아침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교회는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 여자로 대표되는 교회가 아버지가 주신 재물을 방탕하게 다 낭비한 잃어버린 아들과 또는 음행죄를 저지른 여자, 혈루증을 앓는 여자도. 그렇게 대표되는 그런 교회가 바닥을 친 교회이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물이 있는 이 여자의 조상을 찾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이 우물이 누구에게 속한 우물이라고 했습니까? ‘야곱’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3장으로 돌아가서 보면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봅시다.

마태복음 3장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아브라함이 너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들에게 조상은 매우 큰일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여기서도 봅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좋은 물을 긷는 그들에게 조상이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부터 구속함을 감사하는 여러분도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히브리 교회 출신이셨고 여러분은 유대인 공동체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방인 교회는 저 멀리 남겨져있었습니다. 레위인을 통해 제사장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데려오신 새로운 제사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교회를 여러분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1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1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여기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히브리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족보도 없고 기록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에 관해 모세와 말씀하실 때 계속해서 레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레위 계통이 제사장 직분이었습니다. 이방인 교회는 없었습니다. 언약이 바뀔 때까지 제사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언약이 바뀐 것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7장 11절에서 17절을 보겠습니다.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그래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같은 상황으로 주님께서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 사마리아 여자는 거부당했고 그녀의 족보는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브라함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마시고 있었지만 고립되어 있었고 그녀는 고통스러웠습니다. 혹독한 거절을 당하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낮에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제6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우물로 왔으며 그 여자는 그 방문의 시간에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날 보는 교회처럼 세상에서 편안하게 잘 살고 잘 먹고 세상과 타협한 교회는 방문의 시간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은 거절당함에 고통받고 고통에 익숙한 교회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53장에서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모퉁이 돌이었고 고통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 말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방문의 순간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어떤 고통을 통과하셨는지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본질적으로 제6시에 정오에 또 물이 깨끗하지 않은 때에 아브라함에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오는 제6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괴로워하고 세상에 편하지 않는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6시의 사마리아 여자처럼 그녀의 방문의 시간을 만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가보겠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우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큰 이름 아브라함 야곱의 우물, 큰 이름 야곱 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주님께서 예수님을 소개하시는데 고통의 익숙하고 족보가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이 나타난다면 그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무 족보도 없고 기록도 없고 그 지파는 유명한 레위 계통도 아닙니다. 레위 지파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여받아서 제사장이 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죠? 우리는 지금 제사장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데 이번에는 유대 지파 출신이지만 지금 제사장이라 불린다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 이것은 이방인 교회가 주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언약으로 접목된 것을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사실 휴거에 들어가는 교회. 부흥 교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러분은 야곱의 우물에서 진행되는 예배가 두 종류 예배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봅니다. 자 한 그룹은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있고 야곱의 우물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자처럼 정오의 예배드리는 사람들만 생수를 만날 수 있고 참된 예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여자가 이제 예수님을 선지자로 확인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영으로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고 말씀 하십니다. 여자가 즉시 예수님을 식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서 제6시 이 여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마을에서 이 여자를 거절했고 악마 취급했고 비인간적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 여자가 물을 기르러 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에 와서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긷습니다. 여자는 그녀의 죄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불편하게 물을 마셨던 것처럼 깨끗하지 않은 물을 길었습니다. 이런 여자를 예수님께서 만나시려고 하셨고 그래서 여자는 생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여자를 만나셨을 때 여자는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생수를 여자에게 말할 수 있었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에 대해서도 여자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5절입니다.

25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라.

여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여러분 그 여자에 영적인 눈이 이미 열린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의 우물에 제6시에 오는 사람들만 오직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편안한 시간에 온다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늘날 어디 있는지 보십시오 편안한 시간에 오는 여자는 물이 차가운 아침에 야곱의 우물에서 예배를 드리느라 바쁩니다 고난도 없고 고립도 없으며 고뇌도 고통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에 있어서도 매우 편안하고 메시아가 올 필요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닥을 쳤고 제6시에 예배드리는 교회만이 예수님의 보혈을 필요로 하고 방문 시간을 찾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27절입니다.

27이때 제자들이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여인과 말씀하고 계심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 시나이까?”, 혹은 “어찌하여 그 여인과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여자는 이제 그녀가 물을 긷는데 가장 소중한 물건인 ‘물동이’를 버려둘 수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아침에 물을 깨끗할 때 물을 기르려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지킵니다. 그들은 먹는 것에 많은 가치를 두기 때문에 깨끗한 물을 가족에게 주려고 가져갑니다. 하지만 물은 더럽고 또 물이 없어져서 우물이 깊어져서 깃기 어려운 정오에 아무도 없을 때 오는 사람은 심지어 그들은 물이 깨끗하지도 않고 제일 좋은 물은 이미 아침에 온 사람들이 물을 다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물을 뜨지도 않고 우물을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매우 분명히 말합니다

28절입니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내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자 이 여자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분이 그리스도이고 선지자라고 깨달았을 때 여자는 그에 대해 올바른 신원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매우 분명히 보았습니다

28절입니다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여자가 사람들을 부르러 동네로 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세상의 것들에 많은 가치를 두지 않는 교회를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아침 사람들은 그런 다른 교회는 야곱의 우물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들에게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있고 물은 그들에게 있어서 보물이고 귀중함입니다.

그래서 물동이는 그들에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것들을 나타내는 이 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야곱의 우물에 있는 그 물리적은 물은 물리적 세계를 나타내고 그들은 저 우물에서 저 산에서 예배드리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고립된 이 제6시에 예배하는 사람들 그 여자가 바로 지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여자이고 그러고 나서 여자는 물을 기르러 올 때 가져왔던 매우 중요한 물건을 버리는 것입니다. 물을 기르러 올 때 필수품을 버리고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마을로 달려가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어떤 의미입니까?

요한 1 서 2장 15절에서 17절을 보시면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여자가 이 구절에 딱 맞는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세상을 사랑할 것을 예수님은 이미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셨을 때 그는 사실 그의 신부 휴거 되는 교회를 만나시려 했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두 개의 교회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의롭다는 사람들 깨끗하고 시원할 때 아침에 와서 물을 뜨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세상과 잘 타협한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교회 세상에 편한 교회 정치인도 교회에 와서 강단에서 설교하는 교회 거짓이 있고 부도덕한 옷이 있는 교회 세상에서 거부당하지 않도록 세상에서 편안한 그 외 많은 것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자를 보십시오. 여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악마 취급 당하고 사람들이 물 길으러 오는 아침에 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남편도 없어서 정오 한낮 제6시에 와야만 했습니다. 여자는 거절당하고 고립되고 고통에 익숙하였습니다. 이런 여자가 바로 형상! 그리스도가 가진 성품에 바로 그 거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 여자를 만나시려고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자를 만나셨을 때 여자는 심지어 사람들이 보물로 삼는 그 물을 거기에 버리고 달려가서 예수님을 만나라고 마을로 데려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큰 부흥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입니다.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자 이것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왜냐면 이 여자가 그리스도를 알아봤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그녀가 엄청나게 소중히 여겼던 물, 세상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물은 여기서 세상의 것들을 나타냅니다.

여자는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요한 1 서 2장 15-17절에서 나오는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라는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일들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생수를 만남으로서 세상의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여자는 이미 그녀의 갈증을 영원히 간직했기 때문에 여자는 마을로 달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 말을 믿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마리아에 같이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거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문을 열고 그리스도가 들어갈 수 있는 교회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아침에 있는 교회 아침에 물을 길으러 오는 교회는 아침에 아브라함에 우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세상에서 편안하고 그들이 물을 너무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나가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을 전하러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를 여러분이 지금 오늘날 세상에서 보는 교회이고 그런 교회가 전 지구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너무나 편안합니다.

사람들은 큰 차를 고르고 목사는 큰돈을 수거해서 월요일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합니다. 그런 교회는 우선 그들의 방문을 만날 수 없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물을 버릴 수 없으며 그 교회는 문이 닫혀 있어서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같이 거하시도록 문을 열수도 없습니다.

거절당하는 슬픔과 고통과 고립과 악마 취급당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심지어 아침에도 올 수 없는 사마리아 여자처럼 쓰라린 버림받음과 많은 고통에 처해있는 교회만이 방문에 시간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교회입니다. 그 순간부터 좀 보십시오 그 교회는 문을 열고 그다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들어오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실제로 마지막 때에 부흥이 교회에 일어나는 것이고 교회는 그래서 휴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해주시기를 바라고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심지어 쓰라린 고통과 거절과 고립 버림받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 육시에 고통과 제6시에 예배에서 참된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립니다. 제 육시에 여러분에 방문이 있을 것이며 그 제 육시에 하늘에 문이 열려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교회에 휴거를 준비시키는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데이비드 오워 선지자님의 메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