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휴거를 준비시키는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 데이비드 오워 선지자님의 메세지입니다.


믿음이란/ 데이비드 오워 선지자님

믿음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믿음인가? 이것은 여러분과 나눌 중요한 이슈입니다. 왜냐하면 일대일로 나눌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나눌 때 성령께서 이 단어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찌르고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님의 음성에 연결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을 같은 리듬으로 더욱 촉진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주말에 르완다에 갑니다. 그래서 지금 나눕니다. 저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기를 고대했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의 삶에서 ‘믿음’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에 관한 시리즈를 나누고 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님께서 믿음에 관해 많은 부분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왜 현대교회가 지금의 상태로 빠졌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믿음에 관한 방향인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교회를 세우거나 파괴할 수 있는지 볼 것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성장하느냐 쇠퇴하느냐에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여기서 다룰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초로 돌아가는 가르침이지만 교회가 이것을 이해할 때, 주님께 되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믿음에 관한 한 아브라함 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습니다.

믿음에 관한 여정을 시작할 때 아브라함 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습니다. 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읽겠습니다. 이 구절들은 여러분이 설교에서 인용할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15장… 많은 성경 구절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10회 시리즈를 해도 아마 다 읽지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찾으셨으면 아멘 하세요. 저는 확장역을 읽을 것입니다. 의도적입니다. 이를 통해, 이 가르침의 중요한 점들을 열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확장역을 읽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신뢰하니, 의지하니, 주님을 견고히 붙잡으니…’ 다시 읽겠습니다.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저라면 ‘믿으니’라는 단어에 밑줄을 칠 것입니다. ‘믿으니=의지하니=주님을 견고히 붙잡으니’

그분(주님)께서 아브람을 의롭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시고…’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왜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할까요? 믿음에 관한한 여호와께서 천국의 영원한 지혜로 “보라, 아브람의 행함으로 인하여 내가 그를 모든 인간의 믿음의 조상으로 선포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시나요? 아브람으로부터 시작한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행함을 보신 후 믿음의 조상으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조상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아브람의 행위, 삶을 보면 그 안에서 믿음의 정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시겠지요? 주님께서 지금 믿음의 정의를 세우고 계십니다.

저에게 믿음의 정의를 말해 달라고 하면 저는 그것을 성경에서 찾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행함을 근거로 그 타이틀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째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은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정의를 말할 때, 나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믿음에 관한 성경의 정의입니다. 실제로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으로부터 다른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나는 온조로 비숍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온조로 박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일단 그가 말하면 문서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보증이 필요 없습니다. 그가 말한 것을 보증하는 문서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그가 말하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즉, 크리스천의 믿음, 그리스도 지체의 믿음은 하나님을 액면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입니다. 끝! 다른 뜻이 아닙니다. 다른 보증서가 필요 없습니다. 성취될 때까지 붙잡을 보증서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같은 구절에서 다른 정의가 파생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신뢰하니…”

다시 말해, 믿는다는 말은 신뢰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교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현대교회의 타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어디서부터 타락이 시작되었는지 발견할 것입니다. 왜 타락했는지… 할렐루야! 한 단계씩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님을 신뢰한다’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제 하시겠지요? 주님께서는 여기서 더 많은 것을 드러내시는데… 저는 확장역을 읽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 주님을 신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3개의 큰 단어를 소개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세 단어로 믿음의 질감, 표면을 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의지할 때 그 누군가가 유일하게 의지할만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에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난 이 사람에게 의지했다”라는 것은 다른 옵션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옵션을 포기하고 그 사람에게만 의지한 것입니다. 기댄다는 뜻입니다. 왜 제가 앞서나가려고 하는지…”그에게 기댄다”라는 뜻입니다. 이제 교회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해하시지요? 믿음은 기독교 구원의 중요한 기초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께서 믿을만하며 신뢰할만하며 기댈만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돕고 촉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정의만으로도 우리는 현대교회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왜 배교가 교회에 들어왔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올바르게 이해했다면, 의지한다는 것은 오직 그 사람만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제가 다음 것을 말씀드리면 즉시 믿음의 원수를 찾을 것입니다.

그가 꿰뚫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 곧 이것에 대하여 설명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이 문제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나눌 것입니다. 10회 시리즈로도 다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관한 성경적인 정의 하나만으로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층이 갈라진 곳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갈라졌는지… 아시겠지요? 본류에서 교회가 떠내려온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보혈… 계속하면서 믿음에 대한… 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저는 믿음의 정의만 설명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우리의 믿음이… 곧 그것을 다루겠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우리 믿음의 현주소에 다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네 믿음이 너를 치유했다”라고 하신 말씀도 들을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룰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정의만을 다루는 가운데 많은 것이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믿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했다면 우리는 이곳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지요? 주님을 의지했어야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다른 것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벌써 지금의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발견한 것입니다.

문제가 원인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즉, 생과 사를 주님께 의지했어야 한 것입니다. 한 가지 길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일발 통행로를 보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우리 삶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ㅇ것은 오늘날 현대교회에게 매우 강력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믿음의 상태는 어떤가라는 질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을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고 주님을 견고히 붙잡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력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 것입니다. 죽기 살기로 견디며 붙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믿음이 떠내려갈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견고히 붙잡지 못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믿음에 관한 처음 대화에서, 주님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다는 것을 통해 저는 성경에서 그와 관련된 말씀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견고히 붙잡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주님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가? 이 말씀 안에는 시간의 구간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 구간이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셨나요? 시간의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고히 붙잡는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말라는 뜻입니다. 이해하시지요?

분명한 것은 손을 놓칠 위험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여러분이 붙잡는 방법과 관연, 교회는 견고히 붙잡을 뭔가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공개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을 논의할 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믿음의 시작에 관한 말씀을 끝내기 전에 말씀드릴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견고히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해하시지요? 시간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지하라, 그 상태를 견지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떠나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라, 내가 다시 올 때도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믿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 관한 기초적인 이해입니다. 믿음에 관한 성경적인 이해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교회 안의 믿음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의 원인이 그것이었을까요?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목사들이 돈을 설교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씨 뿌려 기적을 받으라! 씨 뿌려 이것을 받으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팔기 시작합니다. 성소에서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우리는 믿음에 관한 일을 맡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르도록 설교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어떻게 목사들이 믿음을 잃을 수 있나요?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서 잘까”를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새를 보면 창고에 모으지도 않지만 매일 아버지께서 먹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도 없는데요… 비가 오든 맑은 날이든 아버지께서 매일 먹이십니다. 또 백합화가 어떻게 입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교회, 종에게 “나의 종인 너에게 내가 얼마나 더 먹이고 입히겠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십니까? 믿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복음을 더럽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타락의 모습입니다.즉, 믿음 없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 나아가 그들이 타락하고 그들의 방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래서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에 대해 말씀드려야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믿음(Faith)의 정의는, 믿는 것(Believing) 즉, 여러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 즉, 교회, 목사, 목회자, 강단으로부터 영광 받으실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주님 안에 믿음(Faith)을 가질 때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왜 이렇게 위대한 것을 말씀드렸을까요? 왜냐하면, 제가 성경적인 정의를 읽었는데, 말씀하시길,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믿음(Faith)이 있다면 천국의 주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Believable) 임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님은 우리가 의지할(Reliable) 수 있는 분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님은 우리가 신뢰할(Dependable) 수 있는 분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님은…! 이해하시죠?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열방에 소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와서 보세요! 나의 하나님은 신뢰할만한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믿을만한(Believable) 분이십니다! 주님은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분이십니다! 신뢰할 수 있는(Trustable) 분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님께 변함없이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시적일까요? 우리가 믿음이 있을 때 시간에 따라 잃지 않고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가시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손을 놓아 믿음을 붙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주님께 대하여 견고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께 정리해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소화할 수 있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 즉, 교회 안에서의 믿음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십자가, 십자가의 사역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렇지만 여러분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더 나은 방법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잠시 저와 함께 창세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것을 붙잡으라고 말씀하실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그리스도 지체의 믿음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그 믿음의 이해를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증명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믿음의 이해를 가지고 얼마나 믿음이 진보했는지, 성장했는지, 큰지, 작은지, 어떠한지 우리 스스로를 증명해보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말씀하시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신뢰하는(Trusts in Him) 자마다, 매달리는(Clings to Him) 자마다, 의지하는(Relies on Him)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엄청납니다. 그렇죠? 매우 위대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제가 본 것을 보셨나요?

여러분은 매우 빠르게 여러분의 구원에 믿음을 갖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크리스천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진원지일까요?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AMP 버전이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믿음을 정의하십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높이시는 것을 봅니다.

믿음을 세우십니다. 즉, 천국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을 보실 때, 여호와께서 교회가 타락함을 보셨을 때, 에덴동산으로 가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주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주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주님의 형상대로, 주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죠?

그 하나님의 형상, 주님을 닮음은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절대 죽지 않으시고, 썩지 않으시며 부패하지 않으시며 사망하지 않으시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 이미지는 썩지 않으며, 사망하지 않으며, 부패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육은, 매우 잘 알듯이 썩고 부패하며 사망하며 죽습니다.

그래서 교회 창조의 본래 청사진을 명확하게 보자면, 창세기 1장 26절에서, 읽지는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청사진을 고안하셨습니다. 인간 즉, 교회를 창조하신 영적인 설계 청사진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창조를 마무리하실 때, 주님께서 창조의 마무리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닮음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조하시고, 창조하시고 육을 입히신 다음,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무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 영은, 그 영의 특징이 있습니다. 사망하지 않으며 썩지 않으며 부패하지 않습니다. 존귀하신 여러분, 이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 특징은 주님의 유일무이하신 의로움입니다. 뛰어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언급함으로써 여러분을 이해시키고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죠?

제가 왜 이것을 말씀드렸을까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바람 부는 날 하나님과 동행한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에 아담이 바람부는 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매우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주님과 매우 친밀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주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의로움으로 걸었을 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오직 의로움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원하고, 영원하며, 영원하고, 변치 않으시고, 변치 않으실 하나님의 특징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주님께서는 매우 거룩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인간이 즉, 교회가 하나님과 동행했어야 했는데, 의로움에 걷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이 의로울 것을 의도하셨습니다. 이해하십니까? 인간이 타락했을 때,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그들이 잃은 건 무엇일까요?

그들은 주님의 의로움을 잃었습니다. 의로움은 인간의 영혼에 내재되어 있던 가장 크고도 영원한 보물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닮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원하심의 값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나누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매우 잘 알듯이, 오직 주님의 의로움만이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영원히 살 도록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수준으로 가겠습니다.

자, 에덴동산에서 타락입니다. 우리는 타락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타락한 것은, 의로움을 잃은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말씀하시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고 귀히 여기사 즉, 높이셨다는 말씀입니다. 높게 사셨다는 것입니다. 귀히 여기셨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높이셨습니다. 즉, 가치가 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가치를 높이셨습니다. 지구의 가치, 인간의 가치, 세상의 가치를 높이셨습니다. 말씀하시길, 세상을 귀히 여기사 독생자”까지”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신뢰하는(Trusts in Him) 자마다, 매달리는(Clings to Him) 자마다, 의지하는(Relies on Him)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잘 들으십시오. 저에게 집중하세요. 그렇다면즉,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갈보리에 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믿음의 가치가 매우 높고 귀하기에 하나님께서 독생자까지 주셔서 누구든지 믿음이 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천국에 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보좌 앞의 믿음의 가치, 즉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매우 위대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지하는 자마다, 신뢰하는 자마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이 믿음의 정의인 것을 압니다! 그 관점에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 매우 큰 가치입니다. 더 나아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실 수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내려오셔서 고통 당하시고 죽임당하셔서 모든 값, 궁극적인 값을 치르도록 보내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밑에서 (이 땅에서) 믿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천국에 들어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치를 보십니까? 이해하기 시작하셨나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걷고 있을 때, 주님께서 에덴동산 정중앙에 있는 나무로부터 나는 열매를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담이 바람 부는 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을 때, 아담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즉, 하나님께 의롭게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순종했습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왔을 때, 대적이 왔을 때, 무엇을 건드렸나요? 믿음을 건드렸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건드렸습니다. 귀중한 것, 믿음을 건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마귀가 와서 믿음을 건드리고 약화시켜 없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대적이 의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냐?” 즉, 의심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어 죽을 것이라는 말이 사실이냐?”

여기 실수를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견고하게 붙잡고 있던 믿음을 지속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대신에, 바람 부는 날 주님과 동행(산책) 할 수 있게 했던 견고한 믿음을 붙잡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것 대신에, 즉,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 대신에, 아담과 하와는 시험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해 본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하셨나요? 다시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 믿는 것입니다. 믿음(Faith)은 하나님을 믿는 것(to believe)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즉, 담보도, 보증도 필요 없으며 보장하고 대비하기 위한 증서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냥 주님을 믿는 것(Believe)입니다.

즉, 주님을 믿으면(Believe), 주님의 말씀도 믿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이루어진 것으로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질문도 불필요하고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치를 바꿔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시험한 것입니다. 마귀가 그들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냐?”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과 악을 시험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만졌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보자.”

이해하십니까? 믿음의 중요성을 이해하십니까? 타락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십니까? 타락의 시작을 이해하십니까? 마귀는 전술을 바꾼 적이 없는 것도 이해하십니까? 지금 교회를 무너뜨리게 한 같은 도구입니다. 믿음 없음입니다.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의심을 섞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잘 들으십시오. 그들은 선악과를 가져다가 먹으려고 했습니다.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이후로 그들은 쫓겨났고 죽음이 지구에 들어왔으며, 영광의 그룹들이 불 칼을 들고 동쪽에서 그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습니다. 죽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형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믿음이 매우 귀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잃으면 형벌은 죽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믿음의 중대성을 이해하십니까? 믿음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전부입니다. 믿음이 주님께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잃으면 형벌은 죽음이라는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 중재자가 없습니다. 중도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에게 죽음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즉, 인간이 믿음을 잃고 타락했을 때, 이해하십니까? 잘 보십시오. 나무로부터 열매를 먹어 타락했습니다. 이해하십니까?

그 후, 주님께서 보좌에서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셨기 때문에, 믿음이 떨어졌습니다. 믿음의 엄중한 값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돌이키고 회복시키시려고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를 믿는(Believes in Him) 자마다, 신뢰하는(Trusts in Him) 자마다, 의지하는(Relies on Him) 자마다, 매달리는(Clings to Him) 자마다, 견고하게 붙잡는(Holds steadfast on Him)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천국에 들어갑니다!

죽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죽음이 믿음의 회복으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에덴동산이 타락하고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나무로부터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나무로부터 저주가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갈보리로 오셨을 때, 나무에서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나무로부터 선악과를 먹었을 때,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에서 우리가 나무로부터 열매를 먹었을 때, 우리는 생명을 찾았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도우셨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이해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구원은 크리스천 믿음입니다. 여러분 교회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로 읽었던 창세기 15장 6절에서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보십시오. 창세기 15장 6절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다른 양상, 다른 특징을 이해해서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대하고 중요한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귀히 여기고, 믿음을 구하고, 믿음을 견고히 붙잡으며 믿음을 보호하고 절대로 잃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길, 다시 6절을 보겠습니다. 말씀하시길,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Believed in), 신뢰하니(Trusted in), 의지하니(Relied on), 견고하였으니 (Reamined steadfast to the LORD),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매우 강력합니다. 즉, 주님께서 매우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의로움은 믿음의 발현인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즉, 믿음이 그리스도의 지체 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높은 수준에서 보자면, 말씀하시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Believing), 신뢰함으로(Trusting), 의존함으로(Depending on), 의지함으로(Relying on)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여기셨습니다.

즉, 교회가 믿음 안에서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 안에서 믿음이 있다면, 그 교회는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믿음은 의로움과 같습니다. 우리는 의로움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과의 영생 교회의 휴거, 어린 양의 혼인식과 같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같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 교회가 갈보리 십자가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합니다. 즉, 인간,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믿음입니다. 인간이 어린 양의 혼인식의 영원한 평강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믿음입니다. 휴거, 하나님과의 평강 말입니다.

휴거, 하나님과의 평강 말입니다. 천국에서 찬양하는 것에 말입니다. 지옥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으로부터 말입니다.

믿음은 휴거와 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같습니다. 믿음은 교회의 의로움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제발, 네 의복을 준비하라”라고 하시는 것은 “네 믿음을 견고히 붙잡아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복은 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주름이 없다고 하시는 것은 교회의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믿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왜 마지막 교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교회는 믿음과 합하여진 자라고 하신지 이해하십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매우 소중한 보물입니다. 교회가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 하나님께 신실한 교회는 하나님께 의로운 교회입니다. 주님의 의로움 안에서 걷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 누군가가 “보세요. 저의 아내는 저에게 신실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는 그의 아내를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내를 신뢰한다면, 그는 아내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도 남편을 매우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 매우 강력한 언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지체의 믿음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매우 강력한 언약을 나타냅니다. 신실한 교회는 주님과 강력한 언약을 맺은, 귀속된 교회라는 것입니다.

매우 강력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신실하다면 관계가 있습니다. 그 관계에 존경이 있는 것입니다. 그 관계를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귀히 여기고, 높이고 승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지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찾으실 때, 주님께서 교회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실 때 즉, “네가 진실로 내가 갈보리에서 주었던 그 언약을 귀히 여긴 적이 있느냐?” 다시 합니다. “네가 정말로 인간의 눈앞에서, 세상의 눈앞에서 내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호소했던 그 엄청난 언약을 높였느냐?”라고 하십니다.

간단명료하게, 여러분은 오늘날 교회의 배교의 시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게 무수히 나타나는 자의성의 배교, 무법의 배교는 주님 안에서의 믿음을 잃었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즉, 목사가 타락하여 그들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주님께서 공급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거짓 기적이 행해지는 교회나 사역회를 보시면 그들은 주님께서 치유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믿음은 교회의 모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한 포스트모던 교회가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길을 되짚어갈 수 있다면, 처음 받은 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견고히 붙잡아야 하는 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주님께 믿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교회가 잃어버린 믿음은 그리스도의 지체의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믿음 없이 교회는 권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의 권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have faith)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교회는 천국에서 하나님과의 미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의 양식에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중대한지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크리스천 사역의 토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어야 하는 의로움도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의로움의 선행 물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 의로움 안에서 걸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는 것은 주님께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다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믿음 없이 의로움 안에서 걸을 수 없습니다. 즉, 여러분이 주님께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함의 의미는.. 여러분은 언약을 깰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신실함은 여러분의 보물을 매우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저는 주님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 신실해야 합니다. 이해하십니까? 교회가 되찾아야 하는 유일한 것, 교회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것을 회복시키시려고 갈보리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타락하기 전, 그들은 의로웠기 때문에 바람 부는 날 주님과 산책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을 때, 에덴동산에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났다면, 그 잃어버린 것은 의로움입니다. 의로움만이 의로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의로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잃어버린 것을 갈보리에서 회복하시려 오셨을 때, 주님께서 회복시킨 첫 번째는 믿음입니다. 그를 믿는(Believes in) 자마다[의지하는(Relies on Him) 자마다, 의존하는(Depends on) 자마다, 매달리는(Clings to Him) 자마다] 멸망하지[썩지 않고(not perish), 죽지 않고(or lost)]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의로움을 다시 가져오셨을 때, 의로움을 믿음으로 옷 입히셨습니다. 믿음은 여호와의 의로움의 매개체입니다.

샬롬.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